“돈이 없어 못 사잡수시는 분은 누구든지 서슴없이 말씀하시면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지하철 관악역 근처에 있는 작은 분식집겸 청과물상에 걸려 있는 큼직한 간판입니다. 가게 간판은 있는지 없는지 겨우 몇사람 들어 갈 만한 작은 크기의 가게 안으로 이리저리 과일이며 식탁이 몇개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예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이곳에서 장사하는 백정남 아주머니는 하루 매상의 1/3이 되는 무료 손님들을 위해 오늘도 음식을 준비합니다.
IMF가 몰아치던 시절 한 중년남자가 빵을 훔치다가 걸렸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 처진 어깨 때문에 마음이 아파 그 길로 이 간판을 만들어 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전히 그 일을 할고 있을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들이나 옷가지들도 모아다가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사진 안에 있는 가게의 모습은 참 초라하지만 넉넉한 웃음이나 마음씨만큼은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어떤 재력가들이나 권력자들보다 커보입니다. 이렇게 여전히 오늘을 사는 이들 가운데서도 사람이 낼수 있는 향기를 내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굳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자기가 받은 은혜를 나누며 기뻐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겁니다. 그들이 사랑과 힘이 여전히 이 땅을 기다리게 하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스산한 비에 바람까지 불어서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을 기뻐하기도 전에 추운 겨울이 주는 스산함을 걱정하게 하는 때입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을 걱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기도 합니다. 지나온 시간들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지요. 어쩌면 아름답기 전에 아쉬워서 그 때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릅니다.
20대에는 10대를 그리워하고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정작 30대에는 20대를 그리워합니다. 그렇게 지금은 지난 10여년 전을 그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10년이 지난 때에 그리워할 시기를 살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미 지난것들에 미련을 가지고 그때를 그리워하고 또 심지어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을 미리 근심하느라 정작 오늘은 즐겁고 힘있게 살지 못하는 삶 말입니다. 인생에 목표를 세워두고 그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지만 결국 다다르고 보면 야트막한 언덕이었다는 누군가의 노래말처럼 우리는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살지 못합니다.
많은 이들은 말합니다. 현재를 기쁨으로 살라고....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들과 어울려 있는 현재를 사랑하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영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더욱 좋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후회하는 것 보다 현재 내게 주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이고 네게 닥친 어려움보다 나에게 약속하신 미래 그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현재를 소망 가운데 풍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족하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가을이 지나가는 동안 이 말씀이 나에게 실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 소망이 풍성할 때도 있고 그렇제 못해 힘겨울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약속을 묵상함으로 나의 오늘을 힘있게 살기를 원합니다.
앞에 소개한 아주머니는 적어도 현재를 풍요롭게 사는 사람일 겁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만족하며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삶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런 삶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기쁨이 넘치는 삶일겁니다. 이번 가을 나의 기쁨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넉넉하고 평안하며 소망 가운데 단단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