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동안 만나는 것들과 삶들 중에 오래된 것들이 주는 슬픔은 딱히 설명할 말을 생각해 내기가 어렵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슬프거나 아프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웠음에도 그들의 오래됨(?)은 나에게 아련한 슬픔을 준다. 아마도 그들의 젊음과 새로움을 누리며 내가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입었던 옷의 포근함이 어느덧 사라지고 이제 입어도 별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외투를 고집스레 입는 것은 그 옷이 몸에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고 그와 함께 긴 시간을 걸어온 탓이다. 추운 겨울과 가슴시린 시간을 함께 해온 탓에 쉬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오랜동난 손에 익었던 만년필을 잃어버리고 나서 한동안 허탈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 자주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리 비싸지도 않은 그 만년필을 새로운 다른 필기구가 대신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내 글쓰는 습관에 길들여진 익숙함도 있겠지만 내가 소중하게 보낸 편지들이나 글들을 썼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번주에 어머님의 생신이 지나갔다. 멀리서 그저 마른 전화 한통 드리고 말 뿐이어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다가 문득 그 나이드심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손에 익었던 물건들이 오래되고 낡아지는 것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건만 나를 가장 사랑하고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나이드심이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더욱 내 마음이 무거운 것은 그 젊음과 환함이 나의 자람과 함께 그렇게 식어가고 바래갔기 때문일 것이다.
늘 그자리에 특별하지 않지만 함께 있어 주셨던 시간들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별로 삶의 바닥을 경험해 보지 않았던 평탄한 인생이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고비들에 늘 동행한 가족이란 이름은 참으로 아름답다.
언제까지 같은 모습으로 함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문득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 그 후에 영원한 동행을 사모하며 오늘의 건강을 기도한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 아주 작은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에게 소중한 존재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깊이 생각하면 왜 모를까만은 그래도 지나가는 하루에 우리는 그 존재들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만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뿐 아니라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조금씩 작별을 고하게 될 터이지만 현재 그것들을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다.
오늘은 잠간 자리에 앉아 내 삶과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본다. 나의 손에 익은 물건들과 옷들로부터 나의 인생에 영원한 동반자로 존재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떠 올려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내 사랑하는 이들이 여전히 오늘도 내 곁에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오늘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오늘 그들의 삶에 비추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바꿀만한 패기와 젊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조금은 소박하고 유약한 삶이 내 앞에 있지만 그래도 오늘 나의 삶이 아주 작은 변혁을 꿈꾸면 나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과 그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하루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신실하게 열심을 내는 나의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의 마지막 달에 한해를 돌아보며 반성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결심을 먼저 해봅니다. 그래 조금씩이라도 나를 바꾸어서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내 삶이 오래되기 전에 멋진 기억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