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서 놓임을 받으려면(막2:1-12)

2015.01.05 10:23

lfkpc 조회 수:394

마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병든 자와 죄인을 동일시하며 말씀하십니다.
죄된 세상의 결과물이 병이기에 개인적인 죄로 인해 주어진 병이라는 의미보다
인류가 동일하게 겪어야하는 죄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병에서 놓임을 받는 과정은 마치 죄인된 인간이 죄로부터 놓임을 받는 것과
동일합니다.
병에서 놓이기 위해서는
먼저는 내가 병들었음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몸이 심각한 상태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치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병에서 놓임을 받으려면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관심과 자각이 필요합니다.
죄인된 내가 구원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내 영적인 상태에 대한
민감함과 자각이 필요합니다.
병들었음이 자각되었다면 이제는 낫고자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는 낫고자하는 의지가 있어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러니까 직접 예수님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네 친구가 보인 치유를 향한 강한 의지와 행동을 보면
또한 중풍병자가 가진 치유에 대한 의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친구의 낫고자하는 강한 의지를
친구들이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이 주는 무기력과 수치스러움으로 관계를 접거나 혹은 고립되어 병을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가 인간에게 어떤 모양으로든 들어오게 되면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하나님을 피하고
고립을 선택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단절에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내 영적인 상태가 병들었음을 자가진단하려고 한다면 바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피하는지. ..
혹은 믿음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은둔과 단절을 지향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병에서 놓이기 위해서는 일어나고 자리를 접어서 집으로 걸어가야합니다.
어떤 치유의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중한 병에 대한 예수님의 치료는 심각할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거라"
어떻게 일어나야하죠...지금 제가 나은 겁니까.. 완전히 치유된 건 가요 차츰 치유되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이 중풍병자가 겪게되는 상황과 같이 들려질 때가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 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라하고 말입니다.
어떤 설명도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은 이의 이해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처럼
이성을 불편하게 하고 당황하게 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이가 누구인가가 중요합니다.
치유와 죄사함의을 말씀하신 주체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매일 내가 만나는 말씀의 주체도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단지 죄인된 인간과 병든 인간이 취할 것은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자리를 접고 집으로 가라면
곧장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설명한다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도 아니고 내가 이해한다고 치유와 죄사함의 과정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를 그저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에 대해 병에 대해 놓임을 받는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는 이런 일을 전혀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의 영역 그 위에 있기에 당연한 반응입니다.
늘 나는 하나님의 영역을 내 수준의 영역으로 내려 놓고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고 아는 만큼만 믿고 순종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아프고 괴롭고 움직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제게 하나님은
"일어나 이제 그 자리 필요없으니 걷고 네가 늘 거하던 네 집으로 가서
네가 평소에 하던 일 열심히 해"라고 하십니다.
일어나 자리를 접고 걸어가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하시겠다는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선포하시고 나는 순종하는 것이 가장 복된 공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