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입니다. 캐나다에서 어린이주일이 어디있느냐고 할 수도 있고 어떤 분의 말 처럼 일년이 다 어린이를 위한 날인데 굳이 어린이 날을 기념할 필요가 있느냐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로 만드시고 세우셨기에 누군가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혹은 어른으로 책임있게 자녀들이나 학생들을 양육하는 사람들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 중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이제는 조금씩 의사소통이 되기도 하고 말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그렇기에 이제는 더이상 나이 말을 그냥 듣고 있지만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하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자기 생각이 너무 확고해서 마치 싸움이 되는 것 처럼 보이기까지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아이들을 위한 기도제목이 바뀌어갑니다. 하나님이 더욱 그들을 기억하시고 품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마음의 위로나 그들의 인생의 진로를 하나님이 이도해 주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아이들의 친구나 만나는 사람, 환경들에 대한 걱정도 기도의 내용이되고 노파심에 하게 되는 말도 간혹 기도의 언어가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벌써 자녀들을 위해 해 줄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조금씩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자기의 생각과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이제는 자기의 신앙고백을 따라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고 고백하고 결단하게 됩니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못내 섭섭한 것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메어달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이 해주시기를 바라고 내가 바라볼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이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하고 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지만 그 기도는 그저 한 아버지의 기도에서 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바른 길을 가되 좋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또 묵상하면서 조금 다르게 기도할 부분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지키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이들이라해서 늘 평안과 형통으로만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간혹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생의 굴곡을 만나고 답답하고 힘겨운 고난의 강을 건너게도 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없애주시기만을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 주시기를 간구하지만 또 그와 함께 그 고난을 이길 힘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없으면 좋겠고 평안 가운데서 살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못할 때에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어려움에 넘어지지 않고 힘있게 통과해 가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말한 것 처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같은 소망으로 나누며 기도합니다. 너희의 인생은 결코 하나님의 손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낙심하지말고 지치지 말라고 말입니다. 교회에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언제라도 그 소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4:17~18/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