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참 추웠습니다. 드디어 여기가 캐나다인줄 알겠다고 할만한 추위와 눈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들 일상을 사는 것을 보면 참 놀랍기도하고 인간의 적응력이 대단하기도합니다. 지나면서 어르신들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들 잘 지내시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추운 시간을 지나면서 지난 시간들 속에서 몸을 움츠리며 지난 때를 떠 올려봅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마음을 움츠러들게하고 때로는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삭풍이 부는 겨울같이 느껴 질 때도 있습니다. 신지어 그런 때는 언제 이 시기가 지나갈지도 가늠이 되질 않아서 더 춥고 힘겹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봄이 오면 좋겠다고 소망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차고 눈발은 날리는 겨울이 계속될 때 나는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는 꽃들을 떠올려봅니다.
봄이되기도 전에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땅을 뚫고 노랗게 또는 보라색으로 올라오는 꽃들이 있습니다. 크로커스(Crocus vernus)라고 통칭해 부르는 꽃들이 그것입니다. 다른 꽃 이름으로는 복수초, 설연화라고도 부르는 꽃도 있습니다. 한국의 산야에는 바람꽃, 너도 바람꽃처럼 예쁜 이름을 가진 꽃들도 있습니다. 눈을 뚫고 올라오는 이런 꽃들을 시작으로 뒤이어 수선화며 튤립이 피면서 완연한 봄이 됩니다.
부활절 즈음이 되면 마치 얼어붙은 대지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듯이 올라오는 꽃들을 보게되고 덕분에 얼었던 마음을 조금씩 녹이게 됩니다. 꽃이 그렇게 하듯이 우리의 삶도 봄이 오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눈을 뚫고 올라오는 꽃들을 보면 하나같이 가녀린 모습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봉오리며 낟즈막히 땅에 붙어 피는 꽃들이 그 추위를 이기고 올라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눈을 피해서 추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힘을 내서 올라오는 생명의 신비 같습니다.
이런 꽃들이 눈을 뚫고 올라 올 수 있는 것은 힘이 강해서이거나 너무 추위에 잘 견디기 때문이기보다는 춥고 긴 겨울동안에도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눈으로 덮인 땅 아래에서 저 넘어로 비춰지는 작은 햇살 한조각과 봄의 작은 바람결을 느끼고 그 기운에 의지해서 싹을 틔우는 것이기에 아마도 모든 신경을 작은 햇살과 따뜻한 바람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때에 용기를 가지고 싹을 틔우고 잎을 내어 다들 눈으로 덮여 여전히 몸을 움츠리고 있는 때에 노란, 또는 보라색의 꽃으로 먼저 봄의 소망을 전하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작고 여린 꽃들에게 봄을 알리는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겨울을 지나는 동안 봄을 소망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주 약하고 여린 꽃이지만 세상이 아직도 추운 겨울을 살고 있을 때에 소망을 보게하는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가 그런 역할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세상은 악이 가득하고 소망이 없는 때이지만 연약한 우리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사랑을 보여주는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곧 넘어질것 같은 모습이기는 해도 우리가 가진 간절한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갈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시고 사모하는 심령에 부으시는 은혜와 기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춥고 긴 겨울을 지나지만 이것이 오히려 더 간절하게 봄을 소망하게 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지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이 주실 복과 기쁨을 바라보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이 좋고 믿음이 좋아야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니라 던 한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보고 그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