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훈련을 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순위가 결정되어야만 하는 경기이지만 각자가 흘린 땀과 수고는 결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며 가치입니다. 각 나라에서 가장 육체적으로 정점에 있는 선수들이 그 경기를 위해 최고의 훈련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닥았으니 그들이 가진 신체능력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의 것보다는 월등히 뛰어날 것입니다. 부디 그들이 수고한 수고가 등수와 관계없이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둘/올림픽의 명암
현대로 접어들면서 운동경기가 프로화 되어가고 운동선수들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명예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해택도 누리게 되었기에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기분야가 그렇지 못하고 또 모든 나라가 동일한 해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어서 어떤 선수들은 많은 해택을 누리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비인기 종목이어서 수고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부분을 국가가 채워주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같은 운동선수들이지만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심지어 그들이 운동을 선택하는 시작부터 이미 차이가 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운동을 하는 것이 맨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어서 많은 비원을 받을 수 있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선택하는 종목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택은 그들이 돌려받는 해택에서도 그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인기 종목과 프로가 있는 종목을 선택하는 길은 개인의 노력과 함께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셋/신체능력의 한계치
최고의 지점까지 간 운동선수들을 보면 참 대단합니다. 메달을 따기 위해서 흘린 수고나 어떤 지점까지 이르기 위해 그들이 한 노력을 보면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훈련과 노력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또 가족이나 팀이 놀랄만한 수고를 통해서 어떤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점에 이르렀다가 은퇴하는 선수들을 보면 자주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선수생활 하는 동안 몸을 너무 사용했기 때문에 은퇴하고는 일반인들보다도 더 약해진 신체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특정한 부위에 부상을 달고 사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신체부분은 그 수명을 다해서 장애를 가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가진 체력과 신체능력은 훈련과 노력으로 어느정도 극대화 할수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 그 수명이 존재하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디 신체뿐일까요. 우리가 가진 것들, 아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수명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시점까지는 우리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지혜 일 것입니다.
넷/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경주
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 유일하게 한계를 가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용하고 훈련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부분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육신은 날로 약해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진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육신은 당연히 수명이 있고 점점 약해 질 것입니다. 훈련과 운동을 통해서 잘 관리하고 좋은 것을 먹는다 해도 조금 연장할 뿐이지 젊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훈련은 끝이 없습니다. 결코 낡아지지도 않습니다. 매일 훈련하고 묵상하며 달음질 할때에 오히려 다욱 강건하여지고 풍성해 진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한국의 김형석교수(연세대학 철학과)가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내면서 자신이 가장 왕성하고 좋았던 시절은 70세 은퇴하고 부터더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의 신앙 여정이 그러했고 학자로서의 삶 또한 그러했습니다. 저술가이자 설교가였던 유진 피터슨목사는 은퇴후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호숫가 오두막에 살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했습니다. 그의 저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잘 풀어 전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알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생이 다하는 때까지 점점 더 힘있고 간결하며 분명한 글들을 썼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 하루 더 강건하여지고 힘있어지는 영적 새사람들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