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데 과연 얼마의 비용일 들까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비용이란 말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리 눈 앞에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로 인해 행복해 하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해서 그 순간 드는 비용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비용이 얼마가 되었든지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테지만 만일 나와 일면식이 없거나 그리 가깝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라면 일정한 비용을 정하고 그 이상이 되면 힘들어 할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비용은 얼마든지 주관적이 될테고 우리는 그 비용을 가늠하기 힘들어 질겁니다.
가장 단순화 하여 선물을 통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싶을 때에 우리는 얼마까지를 쓸 수 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혹은 남편을 위해서는 얼마 정도를 쓸 수 있을까요?
물론 자식들이나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허용하는 한도를 넘어서라도 선물을 주고 싶을 것이고 그것으로 기뻐할 수 만 있다면 우리는 그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혹시라도 비싼 선물을 주지 않아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자거나 그것으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당에 과연 나는 지난 한해 동안 누구에게 그들의 행복을 위해 얼마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는지를 돌이켜 보기 위함입니다. 나아가서는 남은 시간에 누군가를 위해 행복을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분의 말씀 가운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거기에 들어 가는 비용(돈)은 그리 큰 것이 아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먼곳에 있는 이에게 그것도 단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이에게 기꺼이 항공우편으로 선물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고국에서 떠나 캐나다에서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로써는 그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잘 압니다. 한국에서 보내오는 어머님의 정성 가득한 마른 반찬들이나 친지들의 걱정어린 전화들이 우울했던 마음을 금방 환하게 하는 힘이 있음을 경험합니다.
나에게 그러하다면 누군가에게도 동일 할겁니다. 내가 전하는 전화나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그런 비용을 내가 잘아는 이들이나 나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이들에게만 되돌려 주지 않고 다른 많은 이들에게로 확장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너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하는 것”이라신 예수님의 말슴이 귓전을 때립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조차 작은 비용을 들여 행복을 전하는 일에도 인색했습니다. 그러니 그 외에야 말로 할 수 없습니다.
12월을 맞이하면서 한번 생각해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떠 올려봅니다. 1년동안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지만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보냄으로 행복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일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선교지에 아니면 우리가 사랑을 전하면 좋은 사람들에게 12월 예수님의 사랑을 담아서 나눠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들이는 작은 비용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로 인해 더 큰 행복을 선물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뉜 행복은 이 세상을 돌다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우울함을 딛고 일어 서는 용기가 되기도 할겁니다. 그렇게 나뉜 사랑의 선물은 언젠가 나에게 혹은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돌아 올 겁니다.
혹 돌아 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을 예수님으로부터 먼저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지불하신 비용에 비하면 우리가 지불할 비용은 너무도 작은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행복을 살 수 있다니 너무 신나는 일입니다. 참 행복합니다. 미리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