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접했던 마음에 담아 볼만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출처를 알수 없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을테지만 나누어 봅니다.
한 이름난 수도원에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전에는 젊은 수도자들로 가득했던 수도원이 텅 비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찾아오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오던 수도원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몇 몇 나이든 수도자들만 남아 수도원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신뢰와 존중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수도원 인근 숲에 늙은 랍비가 오두막을 짓고 이따금씩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는 했습니다. 랍비가 찾아올 때마다 숲에는 평온함이 깃들었고, 수도자들은 랍비의 경건함에 위안을 받고는 했습니다.
하루는 수도원장이 랍비를 찾아가 자기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랍비가 머무는 오두막을 찾아갔을 때 랍비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도원장을 향해 두 팔을 벌렸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만에 만난 형제처럼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탁자 가운데 놓인 성경책을 말없이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랍비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수도원장 역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가슴이 후련해지도록 울었습니다.
마침내 울음을 그친 랍비가 수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은 너무 무거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당신은 수도원의 문제를 가지고 내게 왔고 나는 당신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르침을 주겠는데,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는 말을 한 번 이상 입 밖에 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도원의 모든 수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랍비에게 귀를 기울이자 랍비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메시야가 계십니다.” 수도자 가운데 메시야가 계시다니, 충격적인 말을 들은 수도원장은 곧바로 오두막을 떠나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수도원 내의 모든 수도자를 불러 모은 수도원장은 전날 랍비에게서 들은 가르침을 전하기 전, 누구도 이 사실을 두 번 다시 언급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 뒤 랍비의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메시야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수도자들 중에 메시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수도자들은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서로들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요한 형제가 메시야였단 말인가?’ ‘설마 마태오 형제가?’ ‘혹시 토마스 형제?’ 그렇게 생각이 많았지만 수도원장의 당부대로 누구도 메시야에 대한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자들은 동료 수도자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과 마음으로 서로를 대했습니다. 동료 수도자 중에서 누가 메시야일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샌지 수도원에는 다시 영적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을 찾아 회복을 경험하는 이들의 발걸음도 날마다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니 실제하는 것이냐는 질문은 그리 현명한 것은 아닐겁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대한 신뢰와 존중이 얼마나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지를 배웁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죽음 가운데서 건짐을 받은 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를 형제로 자매로 만들었고 하나님을 예배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는 한 교회로 모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의 힘과 열정을 드립니다.
이 공동체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신뢰와 섬김일 것입니다.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거나 이해관계가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판단하기에 형제의 성품이나 행동이 어떤지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눈 형제임을 인하여 존중하고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할 뿐입니다. 때로는 교회의 일들을 위해 조정도 하고 충고도 하겠지만 그 역시 사랑이 담겨 있을때에만 작용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존중, 그리고 겸손이 우리에게 넘치는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