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인생에 필요한 12명의 친구들이다.
1.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
2. 무엇을 하자 해도 믿고 따라오는 후배
3.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친구
4. 나의 변신을 유혹하는 끼 많은 친구
5. 여행하기 좋은 먼 곳에 사는 친구
6.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애인
7.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인 친구
8. 언제라도 불러낼 수 있는 친구
9. 독립공간을 가진 독신 친구
10. 부담없이 돈을 빌려주는 부자친구
11. 추억을 많이 공유한 오래된 친구
12. 연애감정 안 생기는 속 깊은 이성친구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이유들이나 필요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친구들이 다는 아니어도 몇만 있어도 사는데 힘이되고 용기가 되어 줄 것 같기도 하다. 과연 나는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헛 웃음을 짓고 만다.
세상이 원하는 친구들의 유형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의 입맛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만나고 불러 교재할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친구란 이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마치 내가 필요할 때 구입할 수 있는 어떤 물건이거나 나의 필요들을 따라 고용할 수 있는 직원이 아닌바에는 그들과 이렇게 관계를 맺어 가는 시간과 애씀이 있어야 하고 인간으로써 통하는 감정의 교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들은 결국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 갈 때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쌓인 우정과 관계는 단순한 한 부분만이 아니라 그 삶 전부를 나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는 그들에게 있는 것들이 관계를 결정하기 보다 나에게 있는 것이 그 관계를 만드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결국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친구이냐에 따라 나의 친구들이 어떠한가가 결정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이겠느냐고 되 물으신 것이다. 나의 이웃은 아니 나의 친구는 내가 누구에게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먼저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사랑하는 아내가 그렇다. 팔불출이어서가 아니라 나는 우리 인생에 그러한 친구의 역할을 감당하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부부일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물론 내 아내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더 호가실한 친구를 소개하는수 밖에 없겠다. 바로 예수님!
나의 인생에 저 앞에 써 놓은 수많은 조건을 넘치도록 만족하고 더 훌륭하게 채워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저런 조건으로 비교해 내기에 죄송할 만큼 예수님은 나에게 가장 완벽한 친구가 되신다.
혹자들은 문제는 그런 예수님이 내가 필요할 때 만나지거나 감정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금은 동의한다. 목사라고해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거나 기도의 자리에서 쉽게 대화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나의 친구가 아닌것은 아니다. 그분은 여전히 내 옆에서 나의 친구로 있으시면서 동해해 주신다.
그분을 만나는 것 역시 나에게 달려있다. 그를 향한 신실함과 믿음을 따라 그리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교재의 깊이를 더해간다. 사람과 소통하듯이 바람부는 들판에서 예수님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함께 바람부는 호수가에 서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나누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