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시골의사 박경철”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마 강연중에 한 그의 경험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아직 수련의로 일하고 있을 때에 보았던 한 환자와 그의 자녀들의 이야기인데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온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고 묵묵히 병상의 지키던 모습과 두 남매를 놓아두고 떠나던 날 이 의사가 잘은 기억나지 않는 말이지만 아직 학생들이었던 두 남매에서 해준 작은 위로와 격려 한마디가 그들의 인생에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작 한 자기는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두 남매는 아름답게 성장하면서 그의 위로와 격려를 기억하며 용기를 내었다는 것이고 장성한 그들이 찾아와서야 비로소 그 이야기를 기억해 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말 한마디 어쩌면 나의 기억속에 남아 잊지도 않을 한마디 말이 벼랑에 선 다른 이들을 죽이기도 하고 그곳에선 그들을 살려 내기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언어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인간 뿐일겁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기에 말의 힘을 품고 창조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언어에도 참 큰 힘이 있습니다. 무슨 신비로운 현상이나 능력이 아니라도 우리들이 하는 말에는 감정이 실려 있기도 하고 힘이 실려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성향에 따라 많이 말하기도하고 침묵을 지키기도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안에는 이 말이 주된 수단이 됩니다. 문제는 그저 단순한 의사 소통만 말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감정과 관심, 혹은 습관과 호, 불호를 함께 싣고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우울한 사람은 그가 전하는 말 속에 그 우울함을 듬뿍 담아 전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그의 밝음을 그의 말에 담아 다른 이들에게 전합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 언어에 사랑의 하트를 풍성하게 담아 전달하기도합니다. 그래서 받은 이들은 그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을 먼저 만나고 그리고 말의 내용을 듣게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풍성하게 담아 당신의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이야기하시고 또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선포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다가 결국 당신 스스로가 말씀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이 얼마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고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신 음성을 아름답게 증폭시켜서 세상에 외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 안에서 행해지는 말들도 하나님을 닮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간혹 우리는 교회에서도 말들을 통해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상처 받는 것에 집중하느라 남에게 나의 상처가 전달 되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오해가 오해를 상처가 상처를 전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한 말씀이 평화이었듯이 우리가 서로에게 전하는 말도 평화이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쉴 자리를 마련해 주고 감정이 쉬어 갈 공간을 마련해 주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함께 이야기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해 주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랑의 말을 할 때 상대도 사랑의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말과 평화의 말은 어색해도 전염성을 가집니다. 내가 그렇지 않아도 조금 노력해 말하면 그 말이 씨앗이 되어 되돌아 올때에는 풍성한 사랑과 위로를 품고 돌아옵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평화의 터닦기는 다른 이들을 통해 더 넓어지고 커져 갈 것입니다.
가끔 더러워지고 무너지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가 평화의 말들이 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와 사랑이 기쁨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이번 여름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