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답하지 않았네
밤하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정채봉 시인의 오늘이란 시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닌 시인에게 그저 하루를 무심히 보낸 것이 주변을 불러보지 못하고 지나버린 시간이 나를 슬프게한 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늘이란 시간은 어제와 내일에 비교되어 현재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그 시간적인 감각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공간적인 감각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살아낸 하루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내가 살아낼 하루를 바라보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오늘은 그래서 그저 넘어 갈 수 없는 시간의 이름이자 마음 깊이 미안함과 죄송함이 올라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의 오늘은 자주 희망과 열정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하루를 마감할 때의 오늘은 아쉬움과 죄송스러움이 가득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지난 시간 잘못을 후회하면서 되돌릴 수 없음으로 아파하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반대로 하루의 시작에서 누군가는 그 하루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두려움과 걱정으로 오늘을 맞이하기도 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즈음에 그 하루동안 있었던 행복한 시간으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아쉬움과 행복을 가슴에 품는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떤 날입니까?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이 늘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사람이어서 나의 오늘 역시 교훈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은 말과 교훈적인 말들을 던져 놓고는 정작 나의 오늘은 부끄럼기가 쉽고 자주 죄송함과 후회로 끝이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나의 하루는 매일 오늘이란 이름으로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변화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의 변화는 이루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이 지금 현재 나의 오늘이 아닌가 되돌아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같은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너의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어떠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새생명을 얻은 우리가 교회로 모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그 시간들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그 말씀에, 그 부르심에 성실하게 응답하며 하루를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이런 질문을 만나면 일단 고개를 돌리고 싶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고개를 돌린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결국 이런 질문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매일마다 새롭게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를 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그 하루인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과 부르심 앞으로 방향을 틀어 걸음을 옮기는 순간부터 우리는 기쁨과 감사의 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부끄러움과 후회에서 떠나 기쁨과 감사, 그리고 가슴벅찬 행복으로 기억되는 시간으로 나아 갈 것입니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모으시며 세워가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제 교회가 되어 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오늘을 기쁨과 감사, 그리고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서 서로 격려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