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기
김요환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십합혜*를 신고 가다가도
산길에서는 오합혜**로 갈아 신었다고 하더군
산에 있는 벌레들이 밟혀 죽을까 봐
죽령에서도 그랬고 이화령에서도 그랬다는군
조두희 시인의 시 ‘옛날에는 그랬다더군’ 중에서 십합혜와 오합혜란 말을 만났습니다. 둘다 집신을 뜻하는 말인데 십합혜는 촘촘하게 엮어 만든 집신을 말하고 오합혜는 이보다는 성기게 엮어 만든 집신을 말하는 모양입니다. 길을 가다가 산길에서는 그 땅에 떨어져 사는 벌레들이 촘촘한 집신에 밟혀 죽을까해서 그보다 성기게 엮은 집신으로 갈아 신었다는 말에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모든 선비들이 그러지도 않았을테고 이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선비들 사이에 그것도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흔히 있었던 일인 모양입니다. 돌이켜 보면 꼭 생명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만 이렇게 수고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대과를 보러가는 마당이니 어떤 생명에게도 원한을 품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지요.
한편으로는 그들이 가진 무지함이나 성공을 위한 정성이 보여서 안타깝기도하지만 오히려 그럼에도 그들이 생명을 통하여 원한을 사지 않음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자신의 인생도 긍휼히 여김을 받고 축복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감이 가기도합니다. 우리네 인생이 늘 그렇듯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나쁜 일을 하고도 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기에 더욱 그럴겁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우리의 삶에서 이런 여유와 해학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벌레라 하더라도 나의 삶에 끼어들 여지가 있는 삶은 그래도 얼마나 행복한지요. 요즈음 우리들의 삶을 보면 벌레는 고사하고 가족조차도 우리의 삶에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형제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내가 생활하고 생각하는 많은 시간들 중에 그들이 내 생각과 삶에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나 나의 생각에 중심은 나이고 조금 넓혀져서 가족들이 뿐입니다.
갈수록 좁아지는 관계와 어쩌면 서로에게 간섭 받기 싫어 하는 환경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우리의 관심은 조금 더 먼곳까지 이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나의 삶에 중요한 것이 있고 그것에 복을 받기 위해서이거나 남에게 원한을 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인하여서, 또 나를 제자로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의 눈을 다른 이들에게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속하여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상처주기보다 격려하고 사랑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멀리 여전히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이들과 생명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을 기억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기도 가운데 관심 가운데 작은 부분이어도 그들에게 나눌 수 있는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관심에는 수고와 시간, 물질이 필요할겁니다. 나를 위해 쓸 것들도 없는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내줄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조금 나의 시간과 물질을 내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나의 관심이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고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되게 할 수 있다면 기꺼히 나의 것들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름 단기 선교팀들을 바라보면서 그 출발이 나와 관계 없는 영혼을 사랑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심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