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고 봄이 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처럼 비가 내린 일주일입니다. 너무도 긴 시간을 답을 모르는 채 지나오면서 누구도 무엇을 말하고 기도할지 모르겠다는 고백만이 있습니다.
‘엠마우스’라는 빈민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그들과 함께 살았던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라는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과 같은 책인 <단순한 기쁨>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고통 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신앙에 대한 설교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 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아마 요즈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글중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기에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그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주 설교 본문에서 처럼 우리는 그저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며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더 할 능력도 힘도 없지만 또한 같이 울어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 하는지도 압니다.
또 신부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희망은 우리 스스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생겨난다.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곤경에 처했다는 의식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죄인이며 그 안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받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는 바울의 로마서의 선언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믿음의 고백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에 대하여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우리를 용서하시고 이 절망 가운데서 끌어 내 주실 유일한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제 나의 구원을 기뻐하며 그 다음 기도의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내가 함께 울어 주어야 할 사람들을 찾으며 그들을 위해 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함께 기뻐할 이들과 어울려 웃으며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어가고 세워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런던제일교회가 이 땅에서 그런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번 한주도 우리가 함께 울고 웃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