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참 많은 색들이 우리 주변을 덮고 있습니다. 새로 올라오는 새싹들이 보여주는 생명의 색들이며, 조그마한 줄기에 붙은 알록달록한 예쁜 꽃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색들은 우리 마음을 즐겁게합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꽃은 꽃들대로 자기가 가진 아름다움을 마음껏 드러내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아마 사람들도 그런 때가 있을겁니다. 자기의 색깔을 조심스레 드러내며 다른 이들 앞에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황홀하듯이 이른 봄이 주는 싱그러움은 또한 한없이 생기 넘치고 즐겁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그 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오늘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다른 이들의 격려와 칭찬을 통해서 더 풍성한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많은 생명들 역시 같을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모양과 색깔을 인정하고 그것을 칭찬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힘있게 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칭찬”을 하는 것이 우리의 자녀들을 얼마나 멋지게 자라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맡은 자녀들과 교회의 청년들에게 더 많은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는 계절이면 좋겠습니다.
칭찬 뿐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함으로 우리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평화롭게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지식과 넉넉함으로 다른 이들의 어떠함을 이해한다는 것이기에 그보다는 인정해 주는 것을 ‘배려’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정과 이해야 서로가 같은 말의 다른 표현 같아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해는 그 주체가 ‘나’이지만 인정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어서 그 주체가 ‘서로’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 해 줄수는 있지만 그대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하신 은혜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가 죄인인 그대로를 인정하셔서 그대로의 죄조차 사랑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인이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다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약한 부분을 내가 채워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의견이 다르고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진리 위에서 함께 서 있을 수 있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진리위에 서는 것입니다.
아무리 서로를 인정한다고해도 양보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우리가 조심하고 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중세는 그것이 빌미가되어 오히려 진리를 떠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서로의 다름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