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국의 이슈는 아마 간통죄의 폐지일것입니다. 지난 26일 오랜동안 형법으로 유지되어온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간통은 죄가 아닌 세상이 된 것입니다.
물론 간통죄가 사라졌다고 해서 부부간의 신실함이 사라지고 부부이외의 상대와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었다고 볼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부관계를 유지 하게하는 것을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실함이지 법일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이 가지는 상징성은 이성간의 육체적 관계에 있어서 더 이상 결혼을 통하지 않고서 자기의 의사와 자유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사회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미 결혼만이 유일한 남녀간의 하나됨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성경의 기록을 보면 구약에서부터 이러한 일들이 있었고 법으로 그것을 규제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세상은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었고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인간이 법조문으로 우리의 죄를 다스리고 죄성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법으로 약간은 억누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이어서 어떤 경로와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죄를 정당화하는데 열심입니다. 그래서 법은 그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하지 우리를 거룩하고 신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최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읽은 아프리카의 한 부족 이야기는 죄를 대하는 성숙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색다른 심판’(The Babemba Tribe and Delinquent Behavior)라는 제목으로 실린 아래와 같은 글입니다.
“남아프리카 잠비아(Zambia)의 북부 고원지대에 바벰바(Babemba)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 바벰바 부족은 범죄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죄 짓는 사람이 생기면, 그들은 정말 기발하고 멋진 방법으로 그 죄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부족 중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를 마을 한복판 광장에 데려다 세웁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을 중단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장에 모여들어 죄인을 중심으로 큰 원을 이루어 둘러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한마디씩 외칩니다. 그 외치는 말의 내용은 죄를 지어 가운데 선 사람이 과거에 했던 좋은 일들입니다. 그의 장점, 선행, 미담들이 하나씩 열거됩니다. 어린아이까지 빠짐없이 말합니다.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 금지됩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모두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판사도 검사도 없고 변호사만 수백 명 모인 법정과 같습니다.
죄 지은 사람을 비난하거나 욕하거나 책망하는 말은 결코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좋은 것만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걸쳐서 칭찬의 말을 바닥이 나도록 다하고 나면, 그때부터 축제가 벌어집니다.
실제로 이 놀라운 ‘칭찬 폭격’은 죄짓고 위축되었던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켜주고, 가족과 이웃의 사랑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겠다는 눈물겨운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효과가 크다고 단정 짓는 이유는 이 마을에 범죄 행위가 거의 없어서 이런 행사를 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아마 이와 같은 그들의 전통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향해 행하신 모습을 가장 잘 닮은 것일겁니다. 우리의 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