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다보니 주변에서 참 많은 애완동물들을 보게됩니다. 제일 흔한 개나 고양이는 거의 집집마다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현대로 올수록 더 많은 애완동물들이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애완동물이란 개념에서 반려동물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물들을 이제는 좀금 더 진지한 가치를 가지고 기르고 대하고 하는 것이겠입니다.
저희집에도 강아지가 한마리 있습니다. 2년 6개월 전에 딸들이 조르고 졸라서 얻은 하얀 강아지입니다. 어느새 정이들고 가족이 되어가서 녀석 걱정을 하느라 여행중에도 일찍 돌아오게되고 녀석을 운동시키느라 함께 밖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기도합니다.
집에 있는 강아지는 작은 녀석입니다. 그래서 애교스럽고 힘도 그리 세지 않습니다. 그렇다고해도 녀석이 무는 것이나 빠르고 강하게 달려들 때면 꽤나 위협적입니다.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아마 쉽게 이겨내기는 어려울것입니다.
산책을 하다가 보면 정말 큰 강아지들을 데리고 다니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가 송아지만한 그리고 생기기도 무시무시(?)하게 생긴 위협적인 개들을 보면 조금은 무섭습니다. 거기에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이라도 가할라치면 빨리 그들을 피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들리는 무서운 개들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뉴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런 개들을 보면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함께 지낸 시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강아지나 반려동물들은 자기 주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가 주인의 말에 순종하고 아주 어린 아이라 해도 상처를 입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덩치가 아주 큰 개들도 아주 어린 아이가 자기를 때리고 올라타고 장난을 처도 결코 아이들을 물거나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참는 것을 봅니다.
특별히 맹인인도견으로 훈련받은 개들은 참는 훈련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위협을 받거나 발을 밟혀서 고통을 느끼더라도 그것에 바로 반응하거나 짖지 않는 훈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인들 기다리고 바로 인도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훈련되고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고마운 모습을 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주인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그 주인을 향한 충성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제일 좋아 하는 단어중 하나가 바로 “온유”입니다. 온유함은 예수님의 대표적인 성품이었고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성품이기도 합니다. 그런 온유함은 바로 앞서 이야기한 갱들에게서 보여지는 충성심속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결코 힘이 없거나 위협에 굴복해서 어린 아이에게 공격하지 않고 자기 주인을 지키기 위해 공격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녀석들이 달려들면 장정이라도 감당하지 못할 힘이 있지만 그들은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인과 사람을 향해 자기의 힘을 제어할 줄 아는 것입니다.
온유는 바로 자기가 가진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그 힘을 절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힘을 절제하여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하도록 맡기십니다. 그의 힘을 믿으시기 때문이고 그의 충성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나도 온유한 사람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