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었어요!
아니, 늦는 것이란 없다오.
카토는 나이 80에 그리스어를 배웠고, 소포클레스는 그 나이에 위대한 작품 ‘오이디푸스’를 썼다오. 시모니데스는 80이 넘은 나이에 라이벌들을 제치고 상을 탔으며, 테오프라스토스는 나이 90에 ‘인간 본성론’ 집필을 시작했다오.
초서는 나이 60에 우드스톡에서 동료들과 ‘켄터베리 이야기’를 썼고,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사력을 다해 나이 80이 지나 ‘파우스트’를 완성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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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노을이 희미하게 사라져가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별들로 하늘은 가득 찬다네. 올바른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결코 늦은 시기란 없다네. 결코!
롱펠로우는 “Never Too Late”라는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하기에 늦은 시기는 없다고 말입니다. 시간의 문제이기도하지만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늦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며 나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나의 마음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에 소망을 가지고 힘을 내기전에는 이 늦었다는 마음이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롱펠로우의 시에서 말하는 것 처럼 자신의 객관적인 나이에 상관없이 무엇인가 의미롭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간혹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자신을 즐겁게하고 힘있게 하는 새로운 일들을 찾아 배우고 즐기는 모습을 뵐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 얼굴에 청년의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이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소망할 때 에너지를 얻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때 조금 더 젊게 인생을 살ㅇㅏ간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에도 같은 것이 적용될 겁니다. 나의 신앙생활에 뭐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고 안주하는 자리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소망의 풍성함이 잘 누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은 나이와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의 순종과 결단에 따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 일을 위해 도우심을 구할 때에 우리는 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한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필요에 따라 특별히 사람들을 세우시기도 하셨지만 그들을 아시는 하나님의 택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분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신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부르셨는지를 고민하고 그 일을 소망하며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며 그 앞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 할 힘이 없을 때에라도 네가 나를 의뢰하면 네게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힘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걸어가며 달려가고 날아 오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구하는 이에게 주어지며 소망하는 이에게 허락될 것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나이과 환경과 실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일을 소망하며 나아갈 마음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