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국에서 ‘열정페이’라는 말이 신문지상을 오르내렸습니다. 취업의 힘겨운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준다는 이유로 정당한 페이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들 때문이었습니다.
젊음의 열정이면 그정도쯤은 이길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열정을 잃어가고 미래를 향한 소망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열정페이란 이름으로 그 마음에 불타는 열정을 식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열정이란 단어는 그 말만으로도 우리에게 가슴을 뛰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열정을 가지고 살기를 바라고 열정이 가득한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아직은 그 열정을 다 품지 못했더라도 혹은 이미 안정된 자리에서 그 열정을 잃어 버렸더라도 우리는 열정이 온전히 내 마음을 채우기를 소망합니다.
때로는 피곤하게 밤을 지새우더라도 열정은 그 피곤을 이길 힘이 되어줍니다. 간혹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플지 몰라도 열정이 있는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달려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이 보장된 성공을 향해 나 있지 않더라도 내 안의 열정을 믿고 힘있게 길을 걷기도 합니다.
그래서 열정이란 말은 자주 젊은이들에게 어울리고 그들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혹 이미 일정부분 삶을 살아 왔고 어떤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무엇인가를 향해 도전하는 이들을 보면 우리는 존경의 눈길을 보냅니다. 그리곤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저런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도 마찬가지여서 첫사랑의 뜨거움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열정이 있습니다. 예배하고 말씀을 읽는 것이 즐겁고 감격스럽습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그 길을 걷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익숙한 교회의 일원이 되면 우리는 조금씩 뜨거움을 잃어가고 교회생활에 익숙해져갑니다. 물론 그런것이 성숙의 한 모습이기도 한것을 압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익숙한 신앙의 삶에서 늘 뜨거운 열정을 그리워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정작 그 열정과 뜨거움을 갖게 되는 것에 두려움도 어려움도 있지만 마음은 그 열정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기를 소망합니다. 문제는 마음과 우리의 행동은 늘 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건 이제 청년들이 해야지 우리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고 느낍니다. 그들을 보면서 젊음이 좋다고 칭찬하면서 한편 부러워 합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나의 어쩔수 없음을 변명하고 포장할 것들을 찾게 됩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열정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고 그 열정으로 말씀을 대하고 기도하며 교회를 섬기는 일에 열심이기를 원합니다.
여러 이유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럴만한 변명들도 떠오릅니다. 그런데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열심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아직도 이 세상을 향하신 열정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그 자녀들에게 힘을 부으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쉬지 않으시는 한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열정을 놓을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이 마음 속에 열정을 일으켜 세워야겠습니다. 나로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 이 일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도우신다면 우리는 젊음의 열정을 지금도 가지고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