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기다림을 묵상합니다. 이미 2000년도 넘은 성탄과 2000년을 향해 가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묵상하면서 드는 생각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오랜동안 기다리고 계셨을까와 또 이토록 오랜시간 기다리고 계신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물론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며 은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같은 질문 앞에 섭니다. 그 기다림의 은혜와 놀라운 신비를 나는 누리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들은 기다림이란 단어가 주는 아름다운 느낌에 비해 기다리기를 무척이나 싫어 하는 존재들입니다. 어떤 영화나 실화 속에 나오는 충성스런 강아지들 처럼 인간은 그리 신실하게 기다리지 못합니다.
우리집에 기르는 강아지도 아내와 내가 집을 나서면 현관 창을 통해 물끄러미 밖을 내다봅니다. 그리곤 우리가 다시 집으로 들어서면 언제나 반갑게 자기의 마음(?)을 다해 격하게 우리를 반겨줍니다.
물론 너무 오래 기다리면 우울해하기도 하고 그런 기다림이 강아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일에 강아지들은 화를 내거나 그 때문에 주인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에비하면 우리들은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기다리게 하는 이들에게 불평하고 그 때문에 화가 나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기다리는 일만큼 싫은 것이 없다고 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기다림은 단지 불평과 싫음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걱정이나 그리움으로 더 많이 마음에 생각됩니다.
짧게는 그가 오지 않는 것 때문에 그의 안부를 걱정하고 당연히 오실분이 오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 졸여합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련한 그리움이며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우리에게 행복한 고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을 그토록 오랜시간 기다리셨던 것처럼 지금은 교회를 기다리십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 얻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시며 신실하심은 결코 이 죄악된 세상과 우리들의 삶을 참아내시기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은 기다리시며 그 심판을 유보해 두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직도 세상을 그대로 놓아 두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이 맞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를 향해 은혜 베푸시기를 멈추지 않으시기에 오늘도 참으시고 기다리고 계시다고 선언합니다.
이 세상의 죄악을 그 자리에서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그 죄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하게 하신 하나님은 그 십자가로 인한 구원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까지 오래 참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참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 사랑에 굴복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시는 일을 쉬지 않고 계십니다. 그렇게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와 베푸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할 뿐만 아니라 그 풍성함을 누리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생각이 아니라 실제가 되는 믿음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