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el No More’라는 책이 있습니다. Michael Erard가 쓴 이 책은 그 부제가 ‘The search for the world’s most extraordinary language learners’로 되어 있습니다. 즉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하기로 알려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탈리아 사람인 Giuseppe Mezzofanti라는 사람은 무려 30여개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전해집니다.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어서 그 때의 기록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정확하게 언어들을 구사했는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먼 이야기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는 이중언어를 잘 구사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중언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거나와 특별히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영어를 사용해서 생활해야할 캐나다 땅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하면 영어를 잘 배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이곳에 사는 동안 끊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영어로 인한 속상함이나 힘겨움도 우리가 감당할 몫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쉽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말을 배운다는 것을 넘어 그 문화와 인식체계를 배우는 것이어서 말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문화를 익히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말은 완벽하지 않아도 이곳에 산 시간이 길면 길수록 언어를 이해하는 힘은 커지는 것을 봅니다.
어디 영어를 배우는 문제에서만 그럴까요.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나라 그 언어를 배우는 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기를 소망하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얼마나 그 언어를 잘 구사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자녀로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그건 대답할 때 조금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화를 통해 익히는 언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이 세상의 언어와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을 하게됩니다. ‘만약 내가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간다면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성도들과 잘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들어가기는 했는데 이곳에서 살면서 영어로 고생한 것처럼 거기서도 언어로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습니다.
말이 낯선곳에 살아가는 나그네의 삶이 이 땅의 삶이라면 분명 내게 익숙한 삶의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땅이 하나님의 나라이리라고 믿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믿음이 일상적인 나라이고 내 말이 쉽게 이해되고 그들의 언어도 너무 편하게 이해되는 나라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도 그 나라의 언어들을 습득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이셨던 삶과 말들이 아마도 우리에게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가장 잘 보여 줄 것입니다. 그분을 따라 말하고 그분을 따라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지만 내가 갈 본향을 사모하면서 그곳의 언어와 삶을 이곳에서 사는 동안에도 살고 싶습니다.
저희 런던제일교회도 그런 교회이길 바랍니다. 이 세상의 언어는 서툴지 몰라도 그 나라 언어는 너무 익숙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서로를 겸손히 낮추어 섬기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