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우리가 때때로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평범한 통로로 오기 때문이다. 그분을 ’우리의 손으로 만졌다‘는 요한일서 1장 1절의 주장은 언제 보아도 놀랍기만 하다. 무한하고 비범하신 분이 어떻게 그토록 유한하고 평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작아져 한 뼘 인간이 되신 신비‘를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은 거창한 볼거리를 원한다.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도 평범하고 흔한 통로로 왔으나 세상은 이를 몹시 비위에 거슬려 한다. 그리스도께서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시되 교만한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게 아니라, 자신이 작고 연약하여 구주가 필요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려 오셨다.
크리스마스 소식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상한 행위와 성취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로 시작된다. 바로 겸손히 구하는 일이다. 그러면 시간이 가면서 우리 안에 생명과 기쁨이 자라는데, 역시 평범하다 못해 거의 따분한 실천들을 통해 자란다.
매일 순종하는 것,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 예배에 참석하는 것,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와 이웃을 섬기는 것, 환난 중에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 등이다. 기쁨의 통로가 평범하다 해서 거기에 구애받지 말라. 그 평범함 속에 복음의 비범한 풍요로움이 숨어 있다. 세상이 늘 범해 온 과오를 당신은 범하지 말라.
(팀 켈러의 예수, 예수 중에서)
팀 켈러의 신작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놀라운 평범함과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생각합니다. 이제는 시끌벅적하지 조차도 않는 성탄의 계절을 지나가면서 우리의 마음도 어느틈엔가 기쁨이 사라지고 있음을 봅니다. 결코 그냥 그렇게 지나 갈 수 없는 시간인데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지나갑니다.
눈에 띄는 장식이나 선물이 아니어도 하나님이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만해도 행복한 기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 은혜는 결코 사라지지도 빼앗기지도 않을 선물입니다.
겨울이라 하얗게 내리는 눈이 좋은 시절이 지나가고 그 눈이 치워야 할 일이 되버린 삶을 살아갑니다. 아직 눈을 밟으며 행복해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눈을 굴리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이 내린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냥 우리가 만든 선물을 기다리느라 마음이 상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의 연약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처럼 오늘도 그 옛적 이스라엘에서 처럼 이곳 캐나다 런던에서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내 입술에서 불려지는 이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나가다가 만나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복을 빌고 싶습니다. 그렇게 성탄을 즐거워 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의 기쁨이 되셨고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에게 환희를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고 위로를 주는 존재들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정감 어린 말 한마디가 이 땅을 살아가는 피로를 날려주는 위로와 격려가 되는 성도들입니다. 오늘 만나는 이들에게 웃음과 성탄 인사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나누는 인사 가운데서 예수님의 사랑이 함께 전해지기를 소원합니다. 예배와 기도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