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찰리 채플린의 말입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자기의 영화 가운데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전체 안에서는 발전과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이를 위해 수고하고 노동하는 이들을 자기 영황의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이중적인 인생의 모습을 들려주어습니다.
이 이야기는 거꾸로 바꾸어도 말이 됩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인생의 무거움과 힘겨움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지점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인생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며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주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는 집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법이니 말입니다.
여름이 되면서 온 주변이 나무와 풀로 가득합니다. 표현하자면 자욱하다고 할만큼 어디를 가도 푸르고 깊은 나무와 수풀의 그림자가 가득합니다. 멀리서 보면 참으로 시원하고 아름답지만 또 그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많은 벌레들이며 가시가 있는 풀들과 발 디딜곳이 없는 풀숲의 깊이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이지만 독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있는가하면 이름없는 꽃이 아주 작은 모양으로 피어 있지만 뜯어 살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신비가 아름답게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꽃”이란 시에 말했듯이 가가이 보면 이쁘지 않은 꽃이 없고 신비롭지 않은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기 그 종류대로 각양의 모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작은 한 생명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이 땅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듣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인간들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세상에 쓸데 없는 인생은 없으며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인생은 다 그나름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자기의 처지가 어렵고 형편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하나님이 맡기신 이 땅의 삶에는 초라하거나 무의미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그 인생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과 비교하며 나의 가치를 평가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대평가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한 개인인 우리의 인생을 절대평가로 우리에게 맡기신 삶을 잘 살아내는지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애쓰는 인생에 찾아오시고 격려하시고 도우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전에 칼럼에 쓴 적이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베이스”에 나오는 주인공 처럼 우리는 나의 인생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것으로 인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주인공은 아니어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이를 위해 애쓰지만 이 또한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다가 때로는 낙심하게 되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마저도 시들해져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우리의 삶은 각자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모양과 형편은 다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 부르심이 각기 다른 모양일테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이 땅에 보내진 인생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아주 작은 돌과 풀, 하늘의 새와 곤충까지도 먹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신 우리를 그냥 살라고 보내셨을리가 만무합니다.
2022년을 절반정도 지나면서 다시 내게 주어진 인생을 힘있고 의미있게 살기를 다짐합니다. 지난 시간도 나에게 의미있고 최선의 시간이었지만 앞으로도 나는 내게 중어진 인생을 기쁘고 감사하게 그리고 힘있고 담대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