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2 08:32

글쓰기와 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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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존경하는 선배중에 만년필을 유독 사랑하는 분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일반화되고 거의 모든 필기를 컴퓨터나 테블릿, 혹은 휴대전화로 하는 요즘 세상에 볼펜도 아니고 만년필을 애용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사용해서 글을 쓰는지에 따라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조금식 변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저도 늘상은 아니지만 만년필을 즐겨 쓰는 편입니다. 잉크를 넣고 펜을 들어 글을 쓰려면 얼마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적당한 종이와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떠오를 생각들을 정리하고 손으로 글씨를 서 내려가면서 그 내용들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이제는 시력이 허락하질 않아서 긴 시간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세를 정하고 글씨를 써 내려가는 즐거움과 펜에서 잉크가 나와 종이 위에 글을 써 나가는 즐거움은 꽤 좋은 느낌을 줍니다.

 

어려서 워낙 악필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쓴 글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만년필로 글시를 써보면 필체가 조금은 교정 된다고 해서 만년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시절에는 수학문제를 풀때조차 만년필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어서 일부러 그렇게 했는가 싶기도 합니다.

 

비록 악필을 온전히 고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만년필을 사용해서 글씨는 쓰는 즐거움은 얻었기에 여전히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면서 글을 쓸 때면 요즘도 어김없이 만년필을 집어 들기도 합니다. 아주 급하고 요긴하게 쓰는 테블릿의 유용함과 더불어 긴 시간을 들여 고민을 녹아 내는 글쓰기의 매력또한 즐기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가끔은 설교를 준비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필기구를 이용해서 준비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제공해주는 이 시간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쓰려고 할 때 대부분은 편의성과 효용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으로 글을 쓰는지에 따라 임하는 자세가 조금은 변하는 것을 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쓰기를 할 때에는 서슴없이 타자를 치고 필요하면 삭제하거나 옮겨 붙이기를 합니다. 조금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색상을 주기도 하고 필체를 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년필로 글을 쓸 때는 먼저 머리로 정리를 하고 다듬은 후에야 비로소 글씨를 서 내려 갈 수 있습니다. 쉽게 지우거나 바꾸기도 어렵기에 처음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 뚜렵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 쓴 글은 다시 읽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기도 합니다.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일은 마치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한 번 결정하고 실행하면 다시 고치거나 쉽게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내 처음 마음이 무엇인지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오롯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행동하고 맗기 전에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바꾸고 지울 수 있는 것이 우리 삶이라면 조금은 수월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보여지고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이미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전에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게 됩니다. 할 수 있다면 곰곰히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하나님의 자녀로써 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거나와 하나님 앞에 기록되는 삶의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집니다. 시간은 여지없이 지나가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하나님 앞으로 빨리 나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 때를 준비하면서 오늘 내가 써 내려가는 인생을 기도와 묵상을 통해 갈무리 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생각은 우리가 가진 믿음을 드러내는 것에 바탕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을 드러내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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