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도교수가 쓴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나오는 글 중에서 재미있는 유머 하나를 옮겨 봅니다.
어느 초등학교 국어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습니다.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곧 느슨하게 풀어져버리는 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다음 □안에 들어갈 말을 쓰세요. 작□삼□ .>
답은 물론 ‘작심삼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이렇게 적었습니다.
답: 작(은) 삼(촌).
글을 보면서 청춘이 아픈게 당연하진 않겠다는생각부터 드는것은 괜한 시비 같기도 합니다. 내용을 다 모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유머가 너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유머가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만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신앙생활에도 유머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낙제점에 가깝겠다 싶습니다. 유머란 듣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생각할 거리와 웃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단한 시간에 잠시 쉼을 주고 웃음으로 분위기를 환기 하는 것이 유머의 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렵고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는 유머러스한 부분이 또한 있음을 봅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이곳 저곳에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 놓으셨는데 가끔은 참 유머러스한 분이심을 발결하게 됩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한 식물이나 동물들이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볼 때 놀라게 됩니다. 신체의 여러 부분을 볼 때에도 꼭 기능적인 면만 집중해서 만들지 않으시고 여러 모양으로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드시기도 하고 완벽한것 같은 사람에게 한가지 중요한 것을 빼 놓으신 것 같은 모습도 보게하셔서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즐겁게 보시겠다 생각이 들게 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완벽하고 멋진 모습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완전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너무 당연한 고백이자 우리가 애써 수고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를 기뻐하시는 분이심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많은 웃음을 웃을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봅니다. 아직 저는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손주들을 얻은 분들을 보면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손주를 얻게 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웃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자식을 얻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이제는 책임과 삶의 분주함을 조금 벗어나서 순전하게 어린 손자의 재롱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저 작은 생명을 본다는 것 만으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도 봅니다. 물론 그 손자도 너무 오래 같이 있으면 힘들게 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그렇게 사랑하는 작은 생명을 보시듯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나이에 상관 없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가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실수하고 때로는 투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만 걷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뛰쳐 나가는 어린 아이와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고백하십나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기쁨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느라 놓치는 것들을 바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 가운데 웃음과 즐거움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나를 향하신 웃음을 웃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우리들의 삶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