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0 09:39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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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시인은 이 세상의 삶을 소풍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땅으로 소풍왔다가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 가는 것이 삶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여행으로 또 다른 이들은 치열한 전투로도 표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나그네로 사는 삶이 익숙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여기 저기 떠도는 인생이란 의미보다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여행이면 좋겠습니다. 어딘가로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이나 풍경을 만나기도 하는 여행이라면 좋겠습니다. 소풍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나마 지금의 삶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다같이 여행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어디를 가는지 보다는 누구와 가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여행입니다. 목적지야 나름의 의미와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환경이 다르고 보는 것들이 바뀔테지만 아직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 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기쁨이 더 큽니다.

 

청년 때에는 자주 혼자 여행을 했습니다. 혼자 산에도 가고 다른 도시를 다녀 오기도 했습니다. 그저 시골길을 혼자 하루 종일 걸은 적도 있을만큼 혼자 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함께가 좋습니다. 내가 할 것들이 더 많고 내 마음대로 먹고 쉴수도 없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여행이 훨씬 즐겁고 행복합니다.

 

가족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은 나의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 즐겁지만은 않아도 함께하기에 좋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야 다를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가족들이라도 항상 마음이 맞지만을 않습니다. 더러 싸우기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도 문을 꽝하고 닫기도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혼자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그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가족들이 있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차라리 혼자였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함께 하기에 불필요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교회라는 공동체로 우리가 모여 나그네 여행을 함께 합니다. 가끔은 삐그덕 거리면서 이 길을 갑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그네로 하던 여행을 마치고 아버지의 집에 가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게 될 때는 어떤 관계와 마음을 가지게 될지를 상상해봅니다. 모두가 서로 사랑만 하는 관계일겁니다. 많이 양보하면서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서 부족한 것 없이 누리는 삶일겁니다. 내가 욕심부리지 않아도 아버지가 너무 크고 넉넉한 분이시기에 한없이 평안한 시간들을 보낼 것 입니다. 더군다나 그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있으시니 더없이 기쁘고 즐거울 것입니다.

 

내가 갈 집을 생각하면서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돌아봅니다. 길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왔습니다.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물을 건너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도 아직 갈 길이 너머도 먼것 같아 지칠 때도 있습니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을 보게됩니다. 그들은 괜찮은 것 같아 보이고 나보다 멀쩡해 보여도 아마 각자의 어려움과 힘겨움을 가지고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길이 나 혼자 걷는 길이 아니기에 힘을 내어 다시 걸음을 옮겨 봅니다. 

 

아버지의 집을 향한 이 걸음이 조금씩 하나님 나라를 닮아 가면 좋겠습니다. 내 입을 통해 부르는 찬양과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통해 경험하는 위로가 우리의 걸음을 힘있게 격려하는 하루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소풍을 나온 날이고 우리는 여행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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