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짧은 시 “풀꽃”으로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짧은 시 한편을 읽으면서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산책을 하다가 혹은 트레킹을 하다가 만나는 꽃들을 봅니다. 화려한 정원에 핀 꽃들이 있는가 하면 무리지어 핀 작은 꽃들도 있습니다. 어떤 꽃들은 들에 피어 이름도 잘 모른채 스치듯 지나가며 보게 되는 꽃들도 있습니다. 길을 잠시 멈추어 서서 그 꽃들을 깊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있는지 놀라게 됩니다.
꽃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릅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줄기에 핀 꽃이든 가시가 가득한 줄기에 핀 꽃이든 꽃은 그 자체로 놀라우리만큼 아름답습니다. 무리지어 피는 작은 꽃들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시인은 꽃을 들여다 보면서 꽃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같은 시선을 던집니다. 자세히 오래 사귀어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책을 읽다가보면 글을 쓰는 이들에게 놀라게 됩니다. 그들의 지식과 말하는 방식에 놀라고 한 글을 쓰기 위해 수고하는 그들의 노력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다 시인들의 시선에 부러움을 느께게 됩니다. 시인들은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진 것 같아 보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삐딱하기도 하고 집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 위에서 보듯이 세상을 바라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노래합니다.
시를 써보겠다고 끄적거려본 적이 없지 않지만 시를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아름다운 표현을 찾기 전에 먼저 세상을 잘 바라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시를 쓸 첫 준비가 된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굉장히 특별한 눈을 가져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선 나태주 시안의 고백처럼 세상을 향해 자기만의 애정과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일겁니다.
늘 설교를 준비하고 전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시인들의 시선과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그 안에서 주시는 은혜를 생각합니다. 그저 문자로 쓰인 어떤 사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쓰이거나 때로는 시와 역사기록, 예언으로 쓰여진 말씀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이 본문 안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기록해 주셨는지를 살펴 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기를 기대하시는지를 발견해 보려고 묵상합니다.
성경은 참 다양한 형태(기록된 방식)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쓴 저자들도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특성과 기록된 방식의 다양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쓰시는 편지와 같은 것이 성경말씀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보이는 하나님을 찾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감추어진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을 읽는 다는 것은 그저 문자로 쓰여진 제품 사용설명서를 읽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일고 묵상하는 일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것 처럼 즐겁과 행복한 일입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고민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합니다. 할 수 있다면 시인의 좋은 눈을 가지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데도 사용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는데에도 잘 쓰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작은 들꽃의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모양을 발견하고 행복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쓰신 아름다운 편지인 성경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은혜로우시며 크고 광대하심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를 향해서 노래하듯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도 듣고 싶습니다. 힘있게 말씀하시면서 도전하시고 힘주시는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잘 준비해서 성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