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로이드 존즈목사님이 그의 책 “부흥”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하러 왔을 때에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이란 질문을 했답니다. 많은 이들이 오랜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답을 했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의 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잘 대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 복음의 핵심이 되는 십자가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신자가가 아니고는 우리가 도무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들어 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우리는 압니다. 다만 안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과 믿음의 고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도 그들과 같지는 않는지를 살펴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잘 만들어진 금목걸이에 달려 있는 십자가이거나 강단 뒷편에 붙어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고 죽어가신 그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그 십자가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 죽음으로 함께 죽임 당하고 그 부활과 함께 살아난 이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언제라도 그 십자가가 찬양되고 예수님의 구원의 죽으심이 자랑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나의 죄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드러난 곳이며 그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으로 댓가를 치르게 하신 곳입니다.
삽자가는 나를 사랑하시지만 결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백성의 자리에 예수님의 피로 통하여 옮겨 놓으신 곳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교회에서 모일 때 마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를 사모하며 바라보고 높이며 찬양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만을 유일한 자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들과 바라는 것들은 이제 우리의 목적지가 되어서는 않됩니다. 우리는 그저 십자가로 인하여 얻게된 생명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지붕에 물이 스며서 바닥으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미 그 지붕은 오래전부터 물이 샌것이라고 말합니다. 물이 조금씩 새서 지붕을 적시다가 그 정도가 심해질대로 심해지면 비로소 천정을 뚫고 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물이 새는 지붕을 뜯어보면 석가래가 많이 썩어버린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복음의 핵심을 붙잡지 못하고 조금씩 다른 곳으로 흘러가도 우리에게서 이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여전히 잘믿는 성도이고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 삶에서 하나님의 복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핵심에 믿음이 놓여 있지 않고 나의 죄인됨을 인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은혜를 바로 알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신앙을 언젠가는 크게 무너짐이 있는 모래위의 집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어떤 문제나 상황의 어려움과 관계의 아픔들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지 않도록 나의 믿음과 신앙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구원위에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죄를 그곳에서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옮겨주신 그 십자가, 그 참혹한 심판의 자리를 기억하고 그곳에서 건짐 받은 감격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감정이전에 믿음의 자리를 확인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