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이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고영민, ‘공손한 손’ -
사람은 쉽게 공손해지지 않습니다. 겸손을 미덕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라해도 여전히 우리는 공손하기보다는 당당한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당당하지만 당신은 공손하시요.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기도합니다. 드러내 놓지는 않아도 분명 우리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고 너무 당당한 손길보다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교회에서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말은 무성하지만 자주 그 무성한 사랑을 넘어서는 무례함이나 거친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너무 친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 나의 실수는 너무 잦습니다.
항상 조심스러워서야 사람이 친해 질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겸손하고 공손할 때 훨씬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합니다. 공손한 장난(?)과 유머로도 우리의 관계는 부드러울 수 있습니다. 결국 서로에게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나에게 대하듯이 남을 대하는것이 그 기본입니다. 내가 받고자 하는 말과 대접을 상대에게 하는 것이 공손함의 기본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대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 친밀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친밀함을 핑계로 상처를 입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난데없이 공손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실은 “공손한 손”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밥을 만드는 어머니들에 대한 마음을 쓰고 싶었습니다.
밥을 대할 때에 우리가 가지는 이 공손함은 결국 그 밥을 만드는 이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먹을 것이 주어짐으로 인하여 순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인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나의 삶에 에너지를 얻는 다는 감사함입니다.
그저 먹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슬픔이 가득할 때 맛있는 밥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우울할 때 밥은 작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은 즐거움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음식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참으로 큰 감사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음식을 만드는 손길은 그래서 사랑이 아니고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어머니에게 맡기셨는지 모릅니다. 요즘이야 간혹 남자들이 그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밥을 준비하는 분은 어머니들입니다.
수고하는 노동으로 치면 참 힘든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거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인 어머니에게 이 밥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대할 때 마다 공손한 마음으로 대해야합니다.
어제 교회에서 바자회를 하면서 많은 음식들을 만들었고 먹었습니다. 그 준비가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를 기억합니다. 공손한 마음으로 대하며 그로인한 기쁨과 감사를 나눕니다. 하나님이 그 손길 가운데 부어주신 사랑의 마음이 더 넉넉한 위로로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부터라도 밥을 먹을 때에 투정하지 않고 감사함과 공손함으로 음식을 대해야 겠습니다. 아내에게도 감사하면서 먹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