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주로 감사를 하게 될 때 그 이유에 주목하게 된다. 내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거나 유익을 주었음에 감사하고 나를 사랑하며 품어 주었음에 감사한다. 그래서 주로 감사는 내가 풍요로울 때 나오는 법이다.
사람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에는 물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에는 오히려 신중하게 된다. 섣불리 말하지 않고 조심하게 된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서 성과가 없거나 어려움을 격게 되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해진다. 아니 겸손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가난한 마음이라고 해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다거나 나누어 줄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것을 자랑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가진 것이 많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자랑할 것도 없으며 그러다보니 말이 줄어 드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 듣게된다. 들을 때에 낮아진 마음이 있다면 들음은 경청으로 바뀔 수 있다.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은 그래서 다른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줄 안다. 그냥 지나갈 이야기들에도 귀를 기울이고 함께 그 이야기 속에서 위로하며 격려를 할 줄 아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를 주는지 모른다. 굳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 주는 이들에게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는 얼마나 자주 듣기보다 말하는 것에 열심을 내는 존재인지 모른다. 특별히 더 말씀을 나누는 목사의 삶에서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많이 요구된다. 마음을 다해 신실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을 더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참 쉽지 않은 일인것을 절감한다.
어쩌면 우리가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게 내가 할 말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굳이 가르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하는 말 보다는 내가 할 말들이 더 중요하거나 관심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들의 말이 나의 생각과 같이 중요하게 느껴지거나 나의 관심을 끌게 되기까지 얼마나 훈련과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과 공감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성경은 자주 겸손을 말한다. 나는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것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는 것이며 나의 것을 가르치는 것에 힘을 쏟지 않는 것이다.
이 겸손과 가난함은 결코 배우는 자세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가장 겸손한 삶을 사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배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셨고 구원하셨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서셨지만 사람들은 그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겸손함과 가난함이 결코 지식 없음이나 능력 없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가난함이 내게 있기를 원한다. 누군가의 말을 깊이 들을 줄 알며 나아가 그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내는 사람으로 서서 내 말과 지식을 조심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늘 감사하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연약과 부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참아내시며 그런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 놓으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아니 감사한다.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겸손하지도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도 않는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런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일에 세우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혹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나는 감사할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시며 주권자 이시기 때문이다. 이미 용서하셨으며 사랑하셨고 또한 그렇게 기다리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