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지신 예수님
이번 겨울은 참 눈이 많습니다. 내리는 눈이 아름답고 즐거운 아이들과 그로 인해 불편해지는 어른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따지고 보면 눈을 불편해한다는 것은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생활이 우선하고 그로 덮어진 세상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없는 어른 말입니다.
사실 눈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눈은 그대로 쌓여 있을 때는 눈부시게 흰 색으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덮을 수 있을듯 하지만 녹기 시작해서 얼룩지기 시작하면서는 오히려 더러워 집니다. 비가 오고 난 도로는 깨끗해 질 수 있어도 눈이 내리고 난 후의 도로는 결코 깨끗해 질수 없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결국 또다시 눈이 내리지 않으면 이 더러움을 가릴 수 없고 봄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거리가 청결해지는 것을 봅니다. 눈의 태생이 중심에 먼지를 두고 얼어서이기도 할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하나님께서 눈을 하얗게 만드셔서 잠시라도 우리의 죄를 덮으시는 것을 인해 행복을 누립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삶을 거룩하고 깨끗한 것으로 치장한다 해도 결국 우리 속에 중심을 이루는 먼지와 같은 죄악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거나 나의 본성이 드러나는 상황에 이르면 우리는 가식을 벗고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그대로 드러내고 맙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고상한 말로 치장한듯 하지만 결국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는 참으로 인간만큼 더러운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죄인 됨은 우리의 생전에 여러 가지로 치장되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하나님의 그 뜨거운 사랑 앞에서는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말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다가 스스로의 모습 가운데서 연약하거나 악한 모습을 발견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마음과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 할 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나뉘어 질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마음이 나의 악함과 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는 결단으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죄의 문제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복된 일이 또 있겠습니다. 우리의 죄를 인해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계절에 다시 한번 나의 죄 된 모습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성육신"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기쁨으로 축복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탄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 한 마구간에 어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 장소가 굳이 마구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세상의 왕궁에 오셨다 하더라도 그 낮아지심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셨습니다.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당신이 사랑할 인간을 만드시고 또 온전히 사랑하셨습니다.그런데 그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자기의 본체인 영광의 자리를 버리시고 인간의 부서지기 쉬운 육체를 입은 것입니다. 배고프고 아프며 외롭고 유혹 받기 쉬우며 실패하기 쉬운 인간의 육체를 그대로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참으로 "추락"이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었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또 인간으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C.S. 루이스는 말하기를 “이것은 마치 목자가 양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고 스스로 한 마리의 양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욱 심각한 낮아지심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낮아지심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서 있있지 못하고 마음 속에 솟아오르는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그 실패 위에 그들의 실패를 참으시고 여전히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입으시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이스라엘의 것과 다르지 않아서 매번 또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죄인의 자리로 달려가지만 그런 우리를 여전히 포기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이 자리에 남아 있음도 또한 고백합니다.
성탄의 계절에 도데체 무엇을 축하하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추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여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나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이 올 성탄을 맞이하는 나의 고백 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성탄의 낮아지심처럼 나를 낮추어 세상을 사랑할 용기를 얻기를 원합니다. 아직도 낮고 추한 곳에서 여전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요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