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여기저기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글을 만나게되었습니다. 이 글은 폴 발레리라는 프랑스 시인의 시 “해변의 묘지”중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 이런 저런 굴곡과 바람이 불어 올때에도 살아야겠다는 애씀을 노래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시인 남진우는 그것을 이렇게 받아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저는 폴 발레리란 사람이 쓴 시에 나오는 다른 경구를 더 깊이 생각합니다.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이는 이것을 믿음으로 확장하여 생각을 이어갑니다. 믿음이 나의 삶을 이끌어 가도록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믿음을 끌어 내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그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현실이라는 척박한 바닥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도록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는 이 현실 위에서 쉽게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게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늘 우리가 지나가는 삶의 현실은 낙심하고 지치며 또는 소망 없는 시간들이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힘겨워하고 지쳐합니다.
우리는 나의 힘겨움과 치침의 근원이 되는 현실 때문에 정작 우리가 누릴 기쁨을 뺏앗기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뿐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기쁨들까지 우리는 놓쳐버리고 맙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잔이나 저녁무렵 부부가 함게 거니는 산책의 즐거움은 이미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조금 더 확실하게 기쁨을 줄만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일만한 것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생활은 소소한 즐거움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감격이나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자이시고 인도자이심을 아는 것으로 얻어지는 기쁨은 너무 이론적인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믿는 바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고 견고하게 할만큼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생활에 이끌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선물한 기쁨과 평안이 현실로 인해 흔들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위로자이시며 든든한 인도자 이심을 현재 걸어가는 삶의 무게로 인해 잊어 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사람들이고 그 평안과 기쁨을 이미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뭐라고해도 삶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기쁨과 소망이 우리의 현실을 이끌어 더 높은 자리로 이끌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과 그 기쁨으로 그분이 함께하시는 평안과 겸손으로 우리가 이끌려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가도록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의 믿음이 현실의 낮은 자리로 가라 앉아 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소망도 힘도 기쁨도 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현실의 생활이 주는 힘겨움이나 지침이 우리의 생각과 믿음을 이끌어 침체되지 않도록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세워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어서 나를 넘어서 가정으로 또 주변에 다른 이들에게로 기븜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나의 믿음을 삶을 이끌어 갈 힘있는 것으로 닦아내길 애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