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방법
어떤 일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주님께로부터
순종을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여러분의 의지를 그분께 내어맡겨
오직 그의 뜻대로만 행하는 것을
여러분의 유일한 소원과 기쁨으로 삼는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순종’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립니다. 우리를 부르는 이름인 "그리스도인"이란 것도 결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이며 그를 닮은 사람, 그를 닮기를 원하는 사람이란 뜻일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불러내셔서 당신의 백성이라고 선언하시고 구원하셔서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옮기셨다는 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근본입니다. 문제는 그 고백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만들어 생각하고 섬기는 잘못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알고 그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알아 그대로 순종하며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은 우리에게 이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과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기준을 갖고 살아가기를 요청합니다.
나를 돌아보면서 그 요구와 기대에 전적으로 부응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이 기대와 세상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 욕망에 넘어지는 모습을 통해 전적으로 이 세상과 닮아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실패는 나를 좌절로 이끌어 가고 하나님이 주신 평안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것이 현재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며 교회의 모습이라면 참으로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고 사는 나와 그리스도인들은 그 삶에 관계없이 또 서로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면서 그 슬픔위에 상처를 더합니다. 그래서 함께 위로가 되어야 할 관계가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가 되고 말기도합니다.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말한 것 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분이 나의 인생에 당신의 성품을 드러내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분이 그러셨던 것 처럼 나의 삶을 순종에 드리면서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기를 소원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시고 또 필요할 때마다 도우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을 허락해 주신 것이겠지요.
저는 작은 소망 가운데 나의 삶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분을 알고 나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도 실패하고 좌절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괜찮아, 그래도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잖니" 말씀해 주실 것이기에 용기를 낼겁니다.
때로는 이 놀라운 은혜가 나를 들뜨게 하기도합니다. 물론 때로는 나를 실망하게 하고 깊은 좌절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는 놀라운 기쁨이 있고 그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를 깨달으면서 감당할 수 없는 행복을 얻기도 하기에 도 다시 그 하나님의 기대와 계획을 배우려하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닮지 못해도, 내가 그럴듯하게 살지 못한다해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즐거움이며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김요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