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잡고 글을 쓰려고 앉았지만 꼬박 48시간이 지나도록 손을 대지 못하고 이리 저리 생각을 만져보고 있습니다. 갈수록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인 것을 깨닫습니다.
목사로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며 가르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문득 부담스러운 것처럼 글쓰기도 그렇게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벌써 두주째 글을 쓰지 않은터라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글 머리를 잡으려하지만 애꿎은 책이며 글들만 앍고 시간을 보냅니다.
“공명”이란것이 어떤 물체가 내는 소리와 같은 주파수를 가진 다른 물체가 소리에 동조해서 함께 울리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물건들이 내는 소리며 사건이나 에너지도 함께 울려 더 큰 힘을 내거나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울리면 작은 외침이 큰 울림이 되어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운동이 되기도 하고 사건이 되기도합니다.
사람이 사물에 공명하려면 그 사물을 잘 알거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고 마음에 울림을 가진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만들어진 물건들끼리 같은 주파수에 공명할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소리가 아니라 마음이 울리는 것은 그 사물을 대할 때 애정을 가지고 혹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진지하고 깊이 바라보고 생각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일입니다.
꽃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며 울리는 것은 그저 그 꽃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꽃을 바라보면서 깊이 관찰하거나 혹은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 할 때 비로소 그 꽃이 사랑이 되고 빛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시인의 마음에는 사물과 자연에 감탄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울리는 울림을 발견하고 감동하는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에게 공명하는 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그로인해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내는 일은 그저 같이 존재함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고 들으며 만날 때에 비로소 그 생각과 삶에 동조하고 같은 울림을 내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나면 우리 안에 있는 울림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하고 그렇게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복음과 구원은 더욱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인간이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래 사랑하심으로 시작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우리 안에서 나누는 일 역시 그렇게 수고로이 다른 이들에게 나아가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알지만 그 마을을 향해 나아가고 공감하며 그 안에 나의 사랑을 전할 때 복음이 구원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향하여 애정을 가지고 오래 참으며 들어주고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그를 사랑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전하는 복음은 그 마음에 울림을 주는 힘이 있을 것입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렇게 선포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한 마음으로 울리는 울림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울려 내는 사랑의 소리가 우리 교회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