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말씀묵상하는 본문이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이었습니다. 너무 풍성하고 은혜로운 말씀을 다 묵상하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며 읽고 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중에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말고 헤아리지 말것을 명령하시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우리는 나의 눈에 들보를 이해하지만 남의 눈에 티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수긍하고 아멘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실 생활에서는 그 말씀을 듣고 나에게 적용하기보다 다른 이들을 향해 이 예수님의 명령을 잦대로 들이대어 적용하기 바빠합니다.
누군가의 연약함을 보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을 담아 아파하거나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우리는 쉽게 그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독교 공동체인 부르더 호프 공동체에서는 ‘사랑으로 직접 말하기’ 수행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이웃들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엄격히 금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불만이 있거나 감정이 상했거나 충돌이 있었다면 둘이 풀어야 합니다. “그를 찾아가 직접 충고하라.”는 마태 18장의 복음적 권고에 따라야지 정작 본인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고 뒷말로 험담을 나누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불평하지 않기를 실생활에서 강조한다고합니다. 불평이란 참으로 강력한 힘이 있어서 불평은 불평을 부르고 낳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모여 힘을 내기 시작하면 작은 바람도 광풍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깨는데 이보다 더 강력한 사단의 무기는 없습니다. 서로가 사랑함으로 섬겨야 할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향해 험담하고 불평하면 그것으로 또 다른 불평과 험담을 불러오고 삽시간에 그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이 험담과 불평은 빨리 버려야할 것들입니다.
누군가는 ‘비난게임 멈추기’라고 부르는 글을 썼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비난이라는 게임을 멈추지 않으면 결코 그 안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게임을 멈추고 나야 비로소 우리는 분노와 불평의 터널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난 게임을 멈추고 나서 오히려 하나님을 찾아 가기를 권면합니다. 나의 불평과 비난을 꺼내어 놓는 곳으로 하나님 앞을 권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나의 마음을 토해놓고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만져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입니다.
시편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그들의 탄식과 분노를 사람을 향해 터뜨리거나 다른 이들과 수근대는 것으로 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기뻐했습니다. 어쩌면 불경스러워 보이는 기도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토해 놓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런 경우를 만난다면 시편을 펴 놓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입술이 범죄하기를 놓아 두지 말고 그 불평과 분노를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올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딸의 속삭함을 들어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의 마음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설을 지나면서 나의 마음을 받아주고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하나님의 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