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워싱턴에 갔을 때에 국립미술관에서 고흐의 “자화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그린 자화상이 여럿있지만 그중 하나를 보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중에 구두(신발) 그림들이 있습니다. 알려지기는 8점에서 10점 정도의 그림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에서도 1886년에 그린 “한 켤레의 신발”이란 작품이 유명합니다.
이 그림을 놓고 이런 저런 논쟁과 관심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림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모양입니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저도 고흐를 참 좋아합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노라면 그 삶이 그려지고 그 고민들이 떠올라 정이 갑니다.
그는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한 켤레의 낡은 구두를 샀습니다. 그는 이 구두를 몽마르트 구역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로 가져옵니다. 그가 이 구두를 왜 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이 구두가 필요해서 구입한 듯합니다. 구두를 신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 구두를 회화를 위한 소품으로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철학자 하니데거는 이 구두가 아마도 어떤 여인인 농부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농부로서의 삶과 여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때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간혹 신발을 소품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많은 신발들은 대게 낡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발을 통해서 고단하지만 정직하게 삶을 살아온 이들의 걸음을 발견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요즘 신발들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가죽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신발은 오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고 먼 길을 걸어도 헤어지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의 시대에 신발의 용도가 걷고 일하는데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그도 그런 목적에 부합하게 쓰인 신발을 보면서 그 주인이 걷던 길과 삶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 역시 열심히 인생을 고민하고 살았기에 타인의 신발에서도 그 인생의 고민과 열심을 발견하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쁜 구두나 꽃신이 아니라 투박하고 낡은 가죽 신발들 특별히 목이 긴 군화와 같은 신발을 즐겨 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신는 신발은 어떤 모양인지 생각합니다. 내가 걷는 삶의 길은 어떤 모양인지도 생각합니다. 누군가 나중에 나를 모르는 어떤 사람이 나의 신발이나 쓰는 물건들을 보고 내 인생을 그려 볼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상상될지 궁금합니다.
그들의 생각이 다 맞거나 그런 일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떠오르는 생각이 “소탈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신는 신발에 그런 말을 쓰고 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걷는 길에서 그런 인생을 살아 내고 그 삶이 내 소품들에 베이기를 바라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 일이 쉽지 않아도 그런 일을 생각하면서라도 오늘을 정직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아 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