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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마다 주보에 글을 쓰면서 거의 매번 한숨을 쉽니다. 어쩌자고 어리석은 일을 시작해서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후회와 함께 말입니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꼭 글을 통해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이렇게 매주마다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것이 자주 부끄럽습니다.

 

처음에는 설교가 아닌 일상의 말로 편안하고 사는 이야기를 건네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주 작은 위로나 권면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그럴만한 재주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주보에 글을 싣는 목사님들이 있지만 그분들은 저에게는 없는 남다는 재주가 있는 모양입니다. 

 

하는수 없이 좋은 글을 쓰는 분들을 찾아보기도하고 책들을 뒤적거리기도합니다. 그러다가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 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통 보이질 않아서 무어라도 작은 불빛을 찾게 됩니다. 나를 비춰줄 아니 내가 쓸 글감을 찾도록 해줄 누군가의 반짝이는 말이나 글을 만나면 그것이 제게는 참 큰 선물이 됩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이면 보통은 집 안에서 잠을 청하기 마련이지만 때론 그 어둠 속에 서기도 합니다. 요즘이야 그런 짙은 어둠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캐나다의 삶은 간혹 그런 칠흙과 같은 어둠 속에 서는 경험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문득 달빛도 없는 칠흙과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있을 때를 생각합니다. 처음은 두려움이지만 이내 그 고요함과 적막함의 평안과 위로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내 그런 평안과 위로는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안에서도 작게나마 만나는 별빛이나 달빛이 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어둠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낮은 사람들이 깨어 다니도록 하시고 밤은 짐승들이 활동하며 먹이를 찾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어둠이 나를 안심시키지 못할 때에 하늘에서 작게나마 땅을 비추는 달빛은 위로가되고 선 곳과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대낮에는 하늘에 떠 있어도 태양의 빛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 그 존재도 알 수 없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그 태양빛을 반사시켜 내면서 우리가 사는 땅을 조금이나마 비춰줍니다.

 

충분한 빛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배려이자 은혜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칠흙과 같은 어둠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빛은 여전히 있음을 알려주시고 그로 인해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말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주히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도 자주 잊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들 말입니다. 

 

너무 분주하게 살아가느라 그런 소중한 이들도 잘 생각해 보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어느순간 우리가 어둠에 서게 될 때 그들에게서 비춰지는 작은 불빛은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와 평안을 선사합니다. 늘 그자리에 있었고 늘 비슷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알지 못하던 그들의 사랑과 위로입니다. 그러나 문득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있어줌으로 인해서 기쁨이 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이 짙은 저녁 시간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동일한 사랑과 은혜를 부으십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우리가 힘겨워 울 때에 혹은 어려움에 탄식할 때에 그분이 보내신 사랑하는 이들의 중보 기도와 위로들을 통해 갑자기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사랑을 오늘도 기억하면서 기쁘고 감사한 시간들을 살아가길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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