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택사스 달라스에서 있었던 특별한 재판 기사가 있습니다. 근무를 마친 백인 경찰이 자신의 집으로 오인하고 들어간 집에서 그 집에 살던 흑인 청년을 총으로 죽인 사건에 대한 재판이었습니다.
경찰이었던 앰버 가이거는 이 일로 10년형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이 끝나자 재판정에 있던 고인의 동생인 브랜트 진은 판사에게 허락을 받은 후 가해자를 안아주고 용서의 말을 전했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한 인간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담 형이 당신을 위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을 전하고 몇분간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며 둘은 눈물을 흘렸고 이 일을 보던 이들도 함께 아름다운 용서의 장면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재판정의 판사였던 테미 캠프도 가해자를 안아주며 그녀에게 자기의 성걍책을 전해주며 요한복음 3장 16절을 소개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용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었고 이에대해 신문들도 칭찬의 기사들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서도 또 다른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개인의 아름다운 용서이지만 이것이 제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그저 아름다운 기사 한줄에 불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들은 이런 용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에는 차별과 증오가 사라지지 않고 더욱 활개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개인의 아름다운 행동이 어떤 의미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이 일이 일어나고 나서 이 재판에서 결정적인 증언을 했던 사람이 보복성 살해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더욱 안타까운 말들이 쏟아지게 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헌신과 용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것을 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소개되고 수많은 기사들이 쓰여지지만 정작 기사를 읽으면서 감동한 사람들의 삶은 그리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 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나의 작은 선의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지만 늘 좋은 반응만을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우리의 기대와 다른 현실이 선한 의지를 쉽게 꺽어 버리는 일들도 보게됩니다.
어렵게 결단하고 선한 행동을 하지만 너무도 쉽게 악은 선을 이기는 것같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들은 고민합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선을 행하는 결단의 단호함만큼이나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선하게 살기를 애스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당장 다가오는 반응과 칭찬은 부족할지라도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면서 그 앞에서 살아가기를 요청합니다.
하루 하루 날이 추워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더욱 쉽게 식고 차갑게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따뜻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에서 맡기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애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사람으로 인해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질 줄 믿습니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나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할 수는 있습니다. 나의 삶이 아름답기를 그리고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