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9 13:01

예수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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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예수님의 침묵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15: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15: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15: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15: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15: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5: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15: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15: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5: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5: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5: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5: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가복음 15장 1절~15절

 

잡히신 예수님의 빌라도의 법정에 섭니다. 이미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공회로 모인 이들의 제판을 받으셨고 그들이 아무런 증거를얻지 못하자 억지로 죄를 만들어 고소한대 따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입장이었던 빌라도는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의문에 섞인 질문을 던지면서 나름의 판단을 하고자합니다. 예수님이 고발 당할 이유가 없음도 알았고 그 고발이 억울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입장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개임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거리두기를 한 상태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부임해서 로마의 눈치를 모아야 자신의 입장, 그들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지 않아야 된다는 정치적인 야망,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 권위에 대한 의문이 그를 우유부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말을 듣고자 하지도 않을뿐더러 적극적으로 죄악에 가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가 결국은 예수님이 사형을 언도하는 죄악의 자리에 서게 했고 이를 통해 빌라도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게 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보고도 그 말슴을 듣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힘과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중의 소리에 따라 악을 결정하고 선언하는 자리에 섭니다.

우리는 그와 같지 않을까?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자리는 아니더라도 소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방향에 따라 동조함으로 죄를 방관하거나 실수와 실패를 눈감아 넘겨버리고 마는 자리에 서지는 않는지 고민해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룩하라고 명령하신 명령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의 소리에 못이기는척 따라 죄를 범하는 자리에는 서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집합니다.

반면 예수님의 태도는 참 극적입니다. 단신을 향해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라는 외침에도 그저 침묵하십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시던 예수님의 모습과 대비해본다면 예수님의 침묵은 참 이례적입니다. 이미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정하셨고 이 일이 당신의 당연한 대속의 사명이라 할지라도 굳이 그들의 조롱과 판단 앞에 침묵으로 일관하실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와 죄악을 아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대답하신다고해도 그들의 판단과 죄악된 외침이 그치지 않을것도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 앞에 당신의 결백을 증명하시거나 당신의 의로움을 선포하시는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침묵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해 지는 십자가를 내가 기꺼이 지고 간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억지로 지지 않으셨습니다. 
힘이 없으셔서 심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도 아니셨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를 해결 할 수 없으셨던 것도 아닙니다.
빌라도의 재판이 대제사장의 고소와 판결이 예수님을 죽인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이에 순종하는 예수님의 순종입니다.


우리를 위해 죄를 속하시는 길을 걷는 예수님은 전적으로 당신의 순종과 자발적 사랑을 가지고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굳이 사람들의 질문과 조롱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대답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다 깨달아 알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예수님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만은 압니다.

고난주간 이 사건과 은혜를 묵상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그분이 나의 구세주가 되시기에 이 땅의 삶이 아무리 앞을 볼 수 없는 시간이라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강건하게 그분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