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면서 각국 정부에서 국민들의 생활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이란 것들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한국정부나 캐나다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상황 가운데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캐나다는 개인에게 학생들에게 또는 소상공인이나 심지어 교회까지 조금씩이라도 도움을 주고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물론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국가의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또 미안하고 아타까운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
저도 국가에서 주는 재난지원금과는 별 상관이 없는 삶이어서 한편 부러움(?)과 다행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번 사태뿐 아니라 국가가 여러 어려운 상황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구축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나라들은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복지만으로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국가시스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어던이들은 이런 것들이 너무도 당연한 권리라고도 생각할겁니다. 세금을 낸 만큼 그 해택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편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보편적인 것들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고 소외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서 인간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보기도 합니다.
친한 선배중에 뉴욕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라면서 신앙생활을 배워왔고 각기 다른곳에서 목회를 하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뉴욕에서의 삶이 여러모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뉴욕에 많은 노숙인들의 삶이 더할수 없는 어려움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에서 사역하는 중에 애주 수요일이면 히스페닉 노숙인들을 상대로 공원에서 예배하고 음식을 나누는 사역을 하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극심해지면서 한동안은 그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다시 그들에게 음식만이라도 나누어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돕는 이들과 협력해서 음식을 나누고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도무지 그들의 삶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어려운 사태에 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방치 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들에게 이 작은 도움의 손길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는 작은 힘이 되어 줄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지는 것들은 국가가 살펴보지 못하는 부분에 나누어지는 사랑일 것입니다.
문득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누군가 현대를 “은혜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뿐 아니라 사람들이 나누는 은혜도 이제는 사라지거나 잊혀져 버린 시대라는 것입니다. 내가 얻는 것과 누리는 것은 늘 당연하거나 나의 권리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것들을 은혜로 받아드리는 것이 어려운 시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은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도 아니며 나의 능력이나 헌신의 결과도 아닙니다.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의 결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내게 주어진 은혜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여전히 현실 가운데서 내가 경험하고 누리는 것들이 은혜와 멀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결코 사라지지도 변하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국가재난지원금”도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권리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로 묵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도 그 은혜를 나누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시간들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