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자신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킵니다. 그중에 낙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낙타는 묵묵히 사람 대신에 짐을지고 사막을 건너는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책임감이 강하고 순종적입니다. 결코 짐을 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그 일을 감당합니다. 물론 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말입니다.
인생에도 그런 낙타형 인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장들과 같이 가족의 생계라는 짐을 묵묵히 지고 회사나 일터라는 사막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아버지들이 그렇습니다. 자녀들과 가정의 삶을 뒷받침하느라 자기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도 또한 그러할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일면 낙타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니체는같은 책에서 낙타형 인간과 반대편에 있는 존재로 디오니소스형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술의 신이자 풍요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는 삶과 죽음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자유롭고 무질서하기도 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한편 스스로 풍요를 즐기고 행복을 우선으로합니다. 낙타형 인간과는 다르게 디오니소스형 인간들은 자기 삶에 충만함을 누리기 위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파괴나 혼란, 추하거나 부조리한 것들도 인정하는 존재들로 이야기합니다.
아마 지금 우리 삶의 두 단편을 보여주는 요소가 있는것 같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면서 내 삶에 풍요로움을 누리기를 원하고 내면적으로는 질서를 깨고 변화를 통해 무엇인가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누리고 싶어하는 충동이 있는 디오니소스적 삶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나 영화, 문학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하고 나는 하지 못할 삶에 대한 동경을 해소하기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삶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삶은 내 몸 하나를 가지고 길을 걷는 것과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가정이 생기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책임들이 우리의 어깨에 짐을 더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요즘과 같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인생에 닥치게되면 그런 짐의 무게는 조금 더 무거워지고 이내 그 무게를 버티는 것이 힘겨워질 때가 있습니다.
짐은 우리에게 무겁게 지워지면 질수록 우리의 마음에서 기쁨과 행복, 자유로움을 빼앗아갑니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가는 길에 핀 꽃을 보는 여유나 중간중간 만나는 이들과 평안하게 교제하고 삶을 나눌 시간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빨리 목적지에 도달해서 이 짐을 내려 놓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 길을 계속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길은 한번 지나가고나면 다시 되돌아오거나 반복할 수 없이 지나가고 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실하고 책임있게 나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그 길을 걷는 동안 지나는 나의 시간을 소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짐이 무겁고 목적지가 멀다고해도 눈을 들어서 주변을 살필 여유가 있다면 그 길이 힘겹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함께 걷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길을 거다가보면 홀로 외로운 시간을 이길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 길을 걷는 동안 가족이라는 동반자와 한교회 성도들이라는 동역자를 만나게됩니다. 내게 짐인줄만 알았던 자녀들이 어느새 나보다 더 힘을 써서 함게 길을 걷기도 하고 내가 지쳐 있을 때에는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대신 내 짐을 져주는 동역자들도 있을겁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맡겨진 길을 걷다가보면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그곳에 언젠가 도착할겁니다.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지납니다. 그 안에서 내가 진 짐만이 아니라 함께 걷는 이들과 풍경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