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청년사역을 하는 후배목사로부터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과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때보다 부유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때보다 가난한 세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가지고 태어난 형편을 바꾸기가 어렵고 내집을 마련하거나 결혼을 꿈꾸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지금 현재를 사느라고 소비와 유흥에 더 깊이 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마다 형편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에 일반화해서 말할수는 없지만 한국이나 이곳 캐나다에서나 자녀들이 살아갈 시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압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 개인이 처한 환경뿐 아니라 세상의 처한 형편도 자연환경이나 질병의 위협을 생각하면 더욱 깁은 한숨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부모님들을 인터뷰한 내용중에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하소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내가 애를 쓰고 노력하면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른바 성공이라는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예 가능성 자체를 차단 당한채 사회로 달을 디디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내 자녀들에게 더 나은 자리에서 출발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고자 하고 그것이 또한 현 장년세대를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가 생각해봅니다. 나아가 내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무엇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지도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녀들의 믿음이며 그들이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는 것일텐데 내가 자녀들을 위해 하고 있는 기도는 오히려 이 상의 가치를 따른 제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는 않은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자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항변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허락하시면서 참 많은 것들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어머니의 품과 아버지의 울타리를 경험하게 하시고 부모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부모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전승되고 그 안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건강하고 멋진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의 연약함은 이렇게 선순환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실패로 악순환되는 모습도 보이게 됩니다. 부모의 상처와 갈등이 자녀들에게 상처가 되고 우리의 믿음 없는 행동이나 말들이 자녀들의 신앙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할 것을 가르칩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유독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자녀를 얻지 못한 한나의 기도로부터 아이를 위해 예수님께 찾아와 메어달린 수로보니게여인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며 부모가 된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자리입니다. 내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해줄수 있다면 좋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들으시마 약속하신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외친 한 아버지의 외침과 같이 우리도 우리들의 자녀들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저는 아직도 전화통화를 하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격려와 힘이 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어머니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하루도 누군가의 기도로 덮이고 우리의 자녀들의 하루도 부모의 기도로 덮여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