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과 같이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는 참 여러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을 먼나라 이야기에서부터 어떤 사람들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보고 들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많은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감동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인생에서 한번도 있을까 말까한 이야기들도 쉽게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중에 꽤많은 것들이 지어내거나 왜곡된 것들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참 많은 감동스러운 이야기들과 부러운 이야기들을 듣고 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감동을 받거나 그것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는 것은 조금 늬앙스가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같은 감정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경우는 내가 그 상황이나 상태로 가고자 하는 욕구를 덜 일으키게 되고 부러움의 경우는 내가 그 사람의 상황이나 형편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나고 실제로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경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있게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그 상황을 소망하거나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소유물들이 내 마음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 나를 갈고 닦아서 그 상태에 이르거나 그가 가진 것들을 가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비교할 문제는 아니고 또 그렇게 분류할 수도 없겠지만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무엇을 부러워하며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거나 감동을 주는 적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가지고 있는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신앙은 지치지 않고 신실한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현재 자기의 상황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또 내가 감동을 받는 이들은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지 않고 감사를 고백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인생에 베푸신 은혜를 육신의 눈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고 누리는 이들의 고백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비록 그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지 못한다 해도 말입니다.
아직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흔들리지 않고 지치지 않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무겁고 흔들리는 자리에 섭니다. 늘 신실하지도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고백하는 찬양과 고백을 듣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들의 인생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었는지와 그 고백을 통해 도달하게된 편안의 자리를 봅니다. 나도 그 자리에 도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고 어떤 신앙과 삶을 부러워하십니까?
미국 필라델피아 외곽에 교수직을 은퇴하고나서 공방(목수)을 만들어 살고 있는 Morgan 부부의 홈페이지를 들여다 봅니다. 영문학교수였던 그는 소박하고 단촐한 집과 공방에서 자기의 삶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저 자기 집에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것이지만 마음을 담아 무엇인가를 만들고 아내와 함께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기뻐하며 사는 모습이 참 부러웠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많은 것들은 어쩌면 내 인생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지 정작 내 삶에 필요는 아닙니다. 바라기는 우리는 오늘 하루를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