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워쉽에서 부른 찬양 중에 “내 안의 한계를 넘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도자인 소진영이 작사,작곡한 찬양으로 자기의 신앙고백을 담은 찬양입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시간 / 헛된 것 없네 그 어느 것도
주의 뜻 알기 어려워도 / 이유 있음을 알기 원해
나의 모든 걸음이 / 주님 안에 있기에 / 주의 이야기 되네
내 안의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주 / 크신 주의 은혜 내 삶을 이끄시네
인생의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니 / 모든 삶 주님께 맡기네
우리는 뚜렷한 한계를 가진 존재들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지식과 인식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고 볼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배움에도 개인에 따라 넘어서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이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의 끝을 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까지를 하기 위해서는 상상도 하지 말고 그저 실행하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아마 수없이 만은 조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번쯤 그런 조언을 따라 나의 한계치를 높여 보려고 하고 그것을 깨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몇번의 실패가 쌓이고 우리의 의지가 꺽이기 시작하면서 더이상은 그런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비유처럼 막대기에 묶인 코끼리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한계를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욕심도 당연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로 나의 한계를 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자 할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은예수님을 만난 백부장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 백부장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고 하나님을 잘 아는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의 병든 종을 고쳐주시기를 구합니다. 그의 상황은 아주 어려웠고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과 같이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가시기를 허락하셨지만 백부장은 그저 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집으로 오시는 것을 감당 할 수 없으므로 그저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통해 공간과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의 고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해도 예수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과 우리가 아는 방식이 아니라 말씀만으로도 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가운데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는 것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십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시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이 하시면 우리의 한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의 한계에 막혀 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아니 내가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꼐란 없습니다.
앞선 찬양을 함께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붙들기를 원합니다. 내가 정해놓은 한계를 넘어 한 발 걸어갈 수 있는 2023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