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을 영어로 Pope라고 부르고 이는 라틴어 Pap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교황에 대한 라틴어 표현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Summus Pontifex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을 의미하는 단어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라는 것은 제사장을 부르는 칭호이기도 하지만 그 뜻은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중재자의 기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고,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수요일마다 강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사장의 위임식과 관련된 본문을 나누었는데 결국 구약의 제사장은 지금 목회자를 지칭하는 것이기 전에 모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참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끊어진 관계를 연결하고 구분된 세상을 이어주는 것이 다리라면 그 다리를 놓는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연결자가 되고 화해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나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출발해서 모든 인류의 역사가 분열과 화합의 반복이었고 나뉨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안에 싸움과 나뉨만 있지 않고 다시 연합하고 화해 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은 그 사이를 메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간격을 이어주기 위해 자기의 지식과 열심을 다한 사람들이었고 그 일에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는 환영 받지 못하고 양쪽으로부터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결국 함께 하는 삶에 대한 확신이 그들을 이끄는 힘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전적으로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먼저는 우리 죄악된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가 되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와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당신의 십자가의 피로 메우셨습니다. 그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도록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또한 품어 사랑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관계 가운데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교회 가운데 분열이 많아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화해와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은 그 대상이 원수라 할지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우리에게 맞기신 역할인 것입니다.
누군가 다리를 놓으면 비교적 편안한 상황에 그 관계를 누리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나서서 다리를 놓는 수고를 하고자 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다리를 놓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삶이라는 간격에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잘 전달되고 그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도록 다리를 놓는 일은 참 쉽지 않습니다. 지난한 묵상과 독서, 그리고 성경과의 깊은 교제가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도 성경을 알아가고 연결하며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릅니다.
성도들의 삶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을 삶으로 연결하는 일인줄 믿습니다. 은혜 가운데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