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진영은 그의 책 [아침의 피아노]에서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가 65세에 암 판정을 받고 나서부터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그는 자기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 보면서 지나기도 했지만 또 현재 걸어가는 삶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아쉽거나 분주했거나 그 모든 시간을 걸어 오면서 자기의 삶을 기록해 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의 걸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삶은 자기의 발로 걸어 온 길이며 내가 수고하여 살아온 시간들 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가는 우리의 삶은 매일을 하나님 앞에서 수고하며 지나온 시간들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봅니다. 작년과 다르지 않고 또 여전히 죄송한 마음으로 마무리 하는 것 같은 한 해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오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게 됩니다. 누구에게 신세를 지면서 걸어 온 길이 아니라 내가 이리저리 수고하고 애쓰면서 걸어 온 길이기에 그 끝에 선 오늘이 감사일 수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걸어 온 시간들이 모여 기록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자 다양한 모양의 인생을 살아 왔고 또 살아 가게 됩니다.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 왔기에 누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내가 나의 시간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고백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이라는 시간이 점점 우리의 인생의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좋은 기억으로도 남을 것이 있고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내 두 발로 걸어 왔기에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돌아보면 후회와 부끄러움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보다 먼저 감사와 기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길 원합니다. 이만하면 이제 나의 실력이 이만큼인 것을 인정할 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더 많은 부끄러움이 남았을지라도 그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속에서 걸어야 할 길일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시간에 늘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동행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아시기에 자주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우리의 삶을 떠나신 적은 없습니다. 매일의 시간 속에서 나를 이끄시고 기다리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 겨울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나를 향해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실망하지 않으시고 기대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한 해를 손으로 기록하진 못했지만 내 발로 기록한 시간이 내년에는 조금 더 하나님께 가가이 가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이 부르신 길에 순종하며 걸어가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한 해를 마무리 하려니 여전히 속상하고 죄송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무어라도 소망을 붙들고 싶어서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소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소망이신데도 말입니다. 다 떠나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가 가득한 시간이길 기도합니다.